[틴틴경제] 스크린 쿼터 축소 왜 문제인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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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틴틴 여러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는 무엇일까요. 바로 2001년도에 나온 ‘친구’입니다. 2백57만명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답니다. 외국 영화로는 1백97만명이 본 ‘타이타닉’이 1위입니다만 ‘쉬리’(2백44만명)에도 못 미칩니다.

전체 한국 영화와 외국 영화 관객 비율을 보면 48.3% 대 51.7%(2002년 기준)로 외국 영화를 본 이들이 약간 더 많습니다. 외국 영화 거의 대부분은 미국 영화(48.8%)입니다.

그래도 수백억원의 돈을 들이고 첨단기술을 동원해 만드는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게 한국 영화를 보는 사람이 많은 셈이니 영화로만 보면 '국산'이 '외제'와 멋진 승부를 벌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영화는 국내법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요즘 신문.방송에 많이 나오는 '스크린 쿼터'입니다. 극장 스크린 중 일정 분량을 한국 영화에 할당(쿼터)했다는 의미에서 스크린 쿼터라고 합니다.

즉 영화관에서 반드시 연중 1백46일 이상 한국 영화를 상영하라는 규정입니다. 그러나 문화관광부 장관이나 시장.군수 등이 20일씩 줄일 수 있도록 되어 있어 현재 영화관들이 실제로 한국 영화를 상영해야 하는 날은 최저 1백6일입니다.

스크린 쿼터는 한국 영화가 지금처럼 큰 인기를 끄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습니다. 사실 1980~90년대만 해도 한국 영화는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애써 만들어봤자 관객들이 별로 찾지 않고, 그러니 영화관 측에서도 가급적 한국 영화는 상영하지 않으려 했지요.

이때 그나마 영화관들이 한국 영화를 내걸도록 만든 것이 스크린쿼터였습니다. 영화 제작자나 배우 입장에서 보면 제품(영화)을 잘 만들기만 하면 고객들에게 판매할 수 있는 창구(극장)는 안정적으로 확보된 셈이었죠.

그러는 사이 많은 사람의 노력이 모아지면서 한국 영화가 발전하기 시작해 좋은 영화가 쏟아졌고, 관객들이 몰려들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국 영화시장도 이제 상당히 커졌습니다.

지난해 영화시장의 매출액은 6천억원이 넘었습니다. 여가가 늘어난 사람들이 영화를 많이 보기 때문에 성장 속도도 무척 빨랐습니다. 99년엔 매출액이 3천억원도 안 됐으니, 3년 만에 배 이상으로 성장한 것이지요.

게다가 영화산업이 잘 되면 비디오.음반.게임.애니메이션 등 다른 문화산업도 함께 커집니다.

상황이 이러니 외국인들은 스크린 쿼터를 눈엣가시로 여깁니다. 스크린 쿼터는 한국 영화시장에 외국 영화들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도록 하는 진입장벽에 해당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바꿔 말하면 스크린 쿼터가 없으면 한국에서 외국 영화를 훨씬 많이 보게 할 수 있다는 거지요.

실제로 멕시코에선 스크린 쿼터를 축소한 뒤 멕시코 영화가 몰락했다고 해요. 그래서 세계 영화시장의 85%를 차지하는 미국 영화업계와 미국 정부는 우리 정부에 스크린 쿼터를 축소하라고 요구합니다.

또 한국에서 스크린 쿼터를 축소하지 않으면 한국과 미국 간에 상호투자협정(BIT)을 체결할 수 없다고 합니다. BIT가 맺어진 나라의 기업이나 국민에 대해서는 외국인인데도 내국인과 똑같이 대우하기 때문에 양국간 투자가 활발해집니다.

경제부처나 기업가들은 BIT가 맺어지면 경제적으로 큰 이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최강의 경제력을 가진 미국에서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곳이란 인식이 국제적으로 퍼져 다른 외국의 투자까지 늘어난다는 것이지요. 때문에 BIT 협정을 꼭 맺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스크린 쿼터를 줄여주자고 합니다.

하지만 스크린 쿼터를 한국 영화산업의 보호막이라고 여기는 영화계나 문화관광부에선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지요. 한국 영화산업의 몰락은 단순히 수천억원대의 시장을 잃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영화엔 만드는 사람들의 의식과 가치관이 들어가게 마련이어서, 우리 국민들이 외국 영화를 주로 보게 되면 한국적 정신과 문화를 잃어버린다는 얘깁니다.

경제계에선 요즘 한국 영화가 재미있고 좋으니 스크린 쿼터가 줄어도 경쟁력이 있다고 하고, 문화계에선 한국 영화가 곧 침체될 것이라고 합니다. 틴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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