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역사로 가르쳐야지 정치가 개입하면 안 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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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호 7 면

청와대는 지난 11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국정화를) 언급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중·고교 역사 교과서 국정화(國定化)를 박 대통령이 지시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한 공식 입장이었다. 그러면서 “국정화 문제는 교육부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검정 최종 결정권자인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여전히 “두 가지 방안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에둘렀다.


 그런 사이 중·고교 역사 교과서 발행 방식에 대한 정치권과 학계의 논란은 더 뜨거워지고 있다. 교육부와 새누리당은 “편향된 교육을 막으려면 역사는 한 가지로 가르쳐야 한다”며 국정화를 주장한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과 역사학계 등에선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해친다”며 반대한다. 급기야 국사편찬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을 만드는 연구진 전원이 국정화 반대 성명을 내 파문이 커지고 있다.

현행 고교 한국사 검정 교과서 8종.

역사학계의 원로인 조광(70·사진) 고려대 명예교수에게 현재 벌어지는 논란에 대해 물었다. 민족사학계의 대표 학자로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 한국 측 위원장을 지내는 등 한·일 관계사 재정립에 앞장서 온 그는 현재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민이 합의하고 토론하게 해야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뜨겁습니다. “헌법은 교육의 중립성과 자주성을 보장하고 있는데, 국정화는 그 정신에 어긋납니다. 특히 인접국과 역사 분쟁을 하고 있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일본과는 고대사, 중국과는 동북공정 문제가 걸려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역사 교과서가 국정화되면 이들과의 관계에서 불리해집니다. 검·인정은 국가의 책임이 아닙니다. 물론 국가에서 검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일본 정부에 항의는 하지만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잖아요. 또 우리가 국정화하면 ‘너희는 사상을 통제하면서 우리의 역사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연구하는 것에 대해 무슨 말이 그렇게 많으냐’고 할 텐데, 그럼 우리는 할 말이 없어요. 우리가 국정교과서를 사용할 때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한국 측 위원장을 맡았는데, 당시 일본 측이 가장 아프게 지적한 것이 바로 그 점입니다.”


 -편향 교육을 막기 위해 국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역사는 사실의 단순 나열이 아니라 사실과 관점의 결합체입니다. 자신은 중립적이고 상대는 편향적이라는 건 전형적으로 상대방을 근거 없이 비판하기 위한 논리에 불과해요. 국정화 시도 자체가 정치적 편향입니다. 중립적 시각이라고 표현되는 것도 여러 사관(史觀) 중 하나여야지, 그것만 강화한다면 문제가 돼요. 민주사회는 다양성을 전제로 토론과 합의를 통해 그 안에서 조화를 찾아나가야 합니다. 국정화로 국가가 잘못 (역사를) 해석하면 그건 국민 전체의 비극이자 미래 세대의 비극입니다. 그 책임은 누가 집니까. 국민이 토론하고 합의하게 해야 합니다. 합의에 따라도 시행착오는 있지만 오류의 가능성은 적을 겁니다. 그 책임은 국민이 지면 되고요.”


 -공과(功過)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견해는 어떻게 보십니까. “역사는 원래 공과 과, 빛과 그림자를 함께 봐야 합니다. 친일을 했다면 친일파라고 규정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들이 정부 수립에 기여했다면 별도로 따져야 합니다. 역사는 화해입니다. 손잡고 나가는 방안을 찾으려면 과거를 드러내놓고 화해해야 합니다. 빛만 보는 건 정치가 하는 겁니다. 정치학이라면 친일파였다고 해도 신생 독립국가를 위해 뭘 했는지 더 강조할 수 있겠죠.”


 -다양한 사관이 중요하다면, 국정화를 주장하는 정치인이나 보수 인사의 관점은 반영할 수 없나요. “관점은 역사학자가 집어넣습니다. 좌편향 교과서를 다스리기 위해 정치·사회·경제·문화 전공자도 들어가야 한다는데, 역사는 정치 교육이 아니거든요. 역사는 역사학으로 가르쳐야죠. 유네스코는 인접 국가의 역사 분쟁이 전쟁의 원인이 된다고 보고 역사 교육의 기준을 정했습니다. 가이드라인 중엔 역사 교과서는 역사가들에게 맡겨야 한다, 정치인이 간여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 있어요. 걸핏하면 세계화·국제화를 논하는데, 이것이 유엔의 원칙입니다.” (2010년 발간된 ‘유네스코 교과서 연구 및 수정 가이드라인’ 보고서는 “정치적 결정에 따라 역사적 사건이 특정 해석으로 기술되고 과거 역사에 대한 학생들의 시각도 정형화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 국정화가 논의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겁니까. “긍정적 역사관은 상식이기 때문에 특별히 주목받지 않고 넘어가요. (국정화는) 정치인들의 ‘오버액션’입니다. 각자의 전공을 인정하는 것이 현대 민주사회입니다. 정치인도 역사학자를 신뢰하고 전문성을 믿어야 해요. 그걸 부인하고 역사 과목에 자신의 정치관을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교과서가 뭔지, 역사가 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 사건 정확히 밝혀 민족 화해를


-보다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역사는 자유로워야 합니다. 역사적 사건을 정확히 밝히고 인류의 행복과 민족의 화해를 향해야 한다는 대원칙이 있는 거죠. 그 두 가지 대전제를 강화시킬 수 있는 방향이라면 해석의 폭은 얼마든지 넓어야 합니다. 그게 민주적인 사고방식이죠. 어떤 정설을 요구하면서 다른 걸 배척하는 건 피해야죠.”


 -역사학자 중에도 국정화를 주장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 학자 중에 한국사를 공부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한국사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국사가 잘됐다, 잘못됐다 하는 건 맞지 않아요. 우리가 문제 삼는 일본의 후소샤(扶桑社)·지유샤(自由社) 교과서에 참여하는 일본사 전공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서양사 전공자 몇 명이 역사학자로 들어갔어요. 일본 역사의 원자료도 모르면서 일본 역사를 쓰는데, 일본 정부는 입맛에 맞으니까 검·인정으로 인정해준 거겠죠.”


 -역사가 정쟁의 도구, 입시의 도구로만 다뤄지는 모양새입니다. “역사교육을 필수화한 건 당연한데, 정말 도구로 많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역사는 자신의 역사를 설계하는 과목으로, 민족의 미래를 그리는 과목으로 설정되어야 합니다. 꿈을 키우는 과목입니다.”


 -“해방 이후 역사교육이 최대 위기”라고 발언한 적이 있는데,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퇴보한 면이 있지만 하나의 진통이고 더 큰 발전을 위한 과정이겠죠. 국정화 논란을 통해 역사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해요. 역사란 무엇이고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 역사와 정치의 관계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이런 기본적인 기준이 만들어져야겠죠.”


 -역사는 어떻게 가르쳐야 합니까. “역사를 암기 과목으로 보는데, 역사는 사색하고 이해하는 과목입니다. 역사를 통해 앞선 인류의 경험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겁니다. 다양한 역사 인식을 스스로 비교해서 민주시민의 역량을 키우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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