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해 가을은 오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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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호 34면

아내는 여름 내내 잠을 설친다. 모기 때문이다. 아내는 모기를 싫어한다. 병적으로 싫어한다. 심지어 모기지론도 싫어한다. 단지 ‘모기’라는 말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말이다.


아내는 모기가 있으면 잠들지 못한다. 한밤중에도 모기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 방에 불을 켜고 눈에도 불을 켠다. 신문지를 말아 들고 모기를 잡을 때까지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집이 좁지만 그렇다고 모기가 몸을 숨길 곳이 없을 정도로 좁지는 않으므로 모기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아내는 중도에 포기하는 법이 없다. 만일 아내가 끝내 모기를 찾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아내는 갑자기 맨손체조 비슷한 동작을 하면서 땀을 낸다. 자신의 몸이 내뿜는 체온 열기, 습도, 이산화탄소, 땀에 들어있는 지방산, 유기산, 젖산을 이용해 모기를 유인하려는 것이다. 그렇다. 아내는 자신의 몸을, 자신의 피를 미끼로 사용하는 것이다. 아내는 끈질기게 모기를 기다린다. 500~600Hz의 진동음으로 앵앵거리는 모기가 다가올 때까지 아내는 이산화탄소와 지방산과 젖산을 뿜으며 기다리는 것이다. 모기에게 가할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고.


남편도 여름 내내 잠을 설친다. 모기 때문이 아니라 모기를 싫어하는 아내 때문이다. 아내 때문에 남편은 한밤중 갑자기 방에 불이 켜지고 누군가 씩씩거리며 온 방을 돌아다니는 광경을 지켜봐야만 한다. 대체 아내는 왜 그렇게까지 모기를 싫어하는 것일까. 앵앵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은 것인가. 그 소리는 암수가 서로를 부르는 사랑의 신호라고 한다. 1초에 250~500번 앞날개를 떨면서 내는 사랑의 신호라니 얼마나 절실하고 열정적이고 성실한 사랑인가. 모기의 외모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일까. 물론 주둥이가 길게 튀어나온 모습이 예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우아한 긴 다리와 제법 잘 어울리지 않는가.


남편은 아내에게 말한다. 그만 자자. 모기도 좀 먹고 살게 놔둡시다. 그것도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던데. 사람 피를 빠는 모기는 다 암컷이고 알을 낳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서라는데 좀 봐줍시다. 우리가 일부러 헌혈도 하는데 그냥 실컷 드시라고 두자고. 고작 몸무게가 3mg 밖에 안 되는 모기가 피를 빨면 얼마나 빨겠어. 모기가 한 번에 빠는 피의 양이 대략 5마이크로리터 정도라는데 우리 몸에 있는 피가 5리터라고 하면 겨우 100만 분의 1밖에 되지 않는데 그거 없이도 우리가 살 수 있잖아. 그리고 모기 입장에서 보면 죄에 비해 벌이 너무 가혹한 것 같아. 빨린 피만 돌려받으면 될 텐데 목숨까지 앗아갈 건 없지 않나. 모기에게는 사람을 해칠 의도가 없어요. 생명의 본능에 따라 모기는 향긋한 냄새를 따라 날아가고 주둥이를 내밀 뿐인데, 그래서 아주 소량의 피를 가져가는 것뿐인데 그것 때문에 죽어야 한다면 그건 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말이지. 그러니 우리 제발 그만 잡시다. 불을 끄고 모기에게 우리 몸을 맡기고, 우리 피를 맡기고 그만 잡시다. 이러다가는 불면이 우리를 죽일 거야.


남편은 아내에게 말한다. 부탁한다. 애원한다. 그 소리는 아내에게 몇 Hz의 진동음으로 들렸을까. 아내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안 돼. 모기한테 물리면 얼마나 가려운데. 잘못하면 피부염에 걸린단 말이야. 또 모기는 말라리아, 뇌염, 황열, 뎅기열 같은 질병의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하는 나쁜 놈이야. 모기에게 베풀 관용 같은 건 없어요. 씨를 말릴 거야.


아내는 모기의 천적이다. 새벽이 되고 아침이 올 때까지 아내는 신문지를 말아 들고 모기를 잡으러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또 맨손체조를 하면서 끈기 있게 모기를 기다린다. 여름 밤 내내 말이다.


아내는 절기 중에 처서를 가장 좋아한다.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처서를 지나면서 한풀 꺾인다. 낮에는 무더워도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것이다. 아침에 보면 아내는 차렵이불로 몸을 돌돌 만 채 얼굴만 쏙 내놓고 누워서 자꾸 웃는다. 눈꼬리와 입꼬리가 거의 닿을 정도로. 남편은 그 웃음의 의미를 안다. 입이 비뚤어진 모기를 상상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


김상득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에 근무하며, 일상의 소소한 웃음과 느낌이 있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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