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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디캠’ 달고 녹화, 드론으로 추적 … “범인 검거 성과” “사생활 침해” 맞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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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경찰이 고화질 영상촬영 장비를 장착한 드론을 조종하고 있다. 미국 노스다코타주 경찰은 전기충격기·고무탄 등 비살상 무기를 장착한 드론을 현장 수사와 범인 검거에 활용할 예정이다. [유튜브 캡처]
과잉진압에 대한 비난이 잇따르자 LA 경찰은 사건 현장을 영상으로 녹화하기 위해 7000여 대의 보디캠(붉은 점선 안)을 도입했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지금까지 내가 본 경찰 중 가장 부당하고 폭력적이다. 그는 애초에 경찰이 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지난 7월 미국 신시내티에서 벌어진 경찰의 총격에 대해 사건을 담당한 해밀턴카운티 조셉 디터스 검사는 이같이 말했다. 당초 이 사건은 경찰관이 용의자를 추적하던 중 몸싸움이 벌어져 방아쇠를 당긴 ‘정당방위’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건 현장 주변에 몸싸움의 흔적이 전혀 없었고, 숨진 흑인 새뮤얼 듀보스(43)는 아무런 무기를 소지하지 않은 상태였다. 정황상 정당방위가 아니라 경찰이 비무장 흑인을 총으로 쏜 과잉진압의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이 잇따랐다.

 확인 결과 당시 신시내티 대학 경찰관인 레이 텐싱은 듀보스가 타고 가던 차량에 번호판이 없는 걸 발견하고 멈춰 세웠다. 듀보스는 운전면허증을 보여 달라는 텐싱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몇 차례의 실랑이 끝에 차량을 타고 달아났다. 그러자 텐싱이 달아나는 차량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고, 듀보스는 현장에서 숨졌다.

 자칫 경찰의 정당방위로 끝날 뻔한 총격 사건은 당시 텐싱이 장착하고 있던 ‘보디캠(bodycam·신체에 부착하는 형태의 카메라)에 의해 전모가 드러났다. 결국 텐싱은 살인 혐의로 29일 기소됐다. 이처럼 보디캠은 최근 미국에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경찰의 공권력 남용과 과잉진압 논란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경찰 또한 공권력을 남용하는 경찰관을 퇴출하고, 과잉진압 의혹을 받은 경찰관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보디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경찰(LAPD)이 이달부터 보디캠을 공식 도입한다. 일선 경찰의 몸에 ‘보디캠’을 부착해 수사 및 범인 검거 시 모든 영상을 녹화하겠단 취지다. 무분별한 영상 녹화로 사건과 무관한 일반 시민들의 모습까지 찍힌다는 점에서 사생활 침해 논란이 일었지만 LA 경찰 당국은 2년간의 논의 끝에 도입을 결정했다.

 LA타임스에 따르면 LA 경찰 당국은 우선 이번 달 중 보디캠 7000대를 구매해 일선 경찰관에게 지급한 뒤 순차적으로 이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사생활 침해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찰이 보디캠을 도입한 건 경찰에 대한 신뢰 회복을 위해서다. 보디캠을 통해 과잉진압 등 공권력 남용과 관련한 논란의 소지를 없애겠다는 취지다.

 미국의 과잉진압 논란은 지난해 8월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19세의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경찰의 총에 살해된 사건이 단초가 됐다. 지난달 28일엔 텍사스주 경찰이 상의를 벗고 양손을 든 백인 남성을 총으로 살해한 영상이 공개돼 여론은 더욱 악화했다. 경찰을 상대로 한 보복성 총격 사건도 잇따르고 있다. 올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총에 맞아 숨진 경찰은 모두 23명. 지난달에는 텍사스주 휴스턴 인근의 한 주유소에서 차량에 기름을 넣던 경찰을 한 흑인 남성이 총으로 살해했다. 단지 경찰 제복을 입고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보디캠 도입에 대한 반발도 거세다. 범죄와 상관없는 불특정 다수가 무차별적으로 촬영되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경찰이 정작 과잉진압이나 공권력 남용 등 불리한 장면이 담겨 있는 영상은 공개하지 않거나 삭제할 것이란 지적도 잇따른다.

 미국 경찰의 보디캠 도입에 대해 미국시민자유연맹은 가정폭력·강간 사건 등을 수사할 때 어느 선까지 촬영할 수 있는지 기준이 애매하다고 지적했다. 성범죄 등 신원 공개가 민감한 범죄를 수사할 때는 경관이 녹화를 중단할 수 있지만 그 판단을 경찰관 개인에게 맡길 게 아니라 구체적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디캠과 함께 범인 검거와 수사에 드론을 활용하겠다는 경찰의 계획 또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미국 노스다코타는 테이저건(전기충격기)이나 최루가스·고무탄 등으로 무장한 드론 도입을 공식 결정했다고 USA투데이 등 미 언론이 보도했다. 군사적 목적 이외에 무기를 장착한 드론에 대해 도입 허가가 난 것은 처음이다.

 노스다코타 경찰 당국은 “드론을 활용한다면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가는 범인을 검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범인 추적뿐 아니라 노스다코타주 경찰은 드론에 장착된 테이저건을 이용해 범인을 제압할 수 있고, 폭력시위대나 해산 요청에 응하지 않는 불법 집회 참가자들에게 최루가스를 발사할 수도 있게 됐다.

 노스다코타 경찰은 엄격한 절차와 규정에 따라 ‘비살상’ 무기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큰 위험성은 없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미국 IT전문매체인 더비지는 “경찰이 드론을 원격 조종하며 수사에 활용하는 것은 오히려 경찰력의 남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 연방항공국에선 노스다코타 지역에서 1200피트(약 366m)까지 드론을 비행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고 있다. 경찰이 규정을 어긴 채 불법적인 용도로 드론을 활용해도 이를 감시하기 어렵단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드론에 탑재할 테이저건의 살상력 또한 도마에 올랐다. 노스다코타 경찰 당국은 테이저건을 ‘비살상 무기’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에만 최소 39명이 테이저건 사용으로 사망했다고 더비지는 설명했다. USA투데이 또한 “드론에 테이저건을 탑재했음에도 비살상 무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라며 “테이저건의 위험성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초 릭 베커 의원이 경찰의 드론 활용 법안을 발의한 이유는 경찰의 수사 권한을 축소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수사라는 목적으로 경찰관이 직접 모든 현장을 누비는 것 자체가 민간인의 사생활 침해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드론을 활용해 사건 증거를 모으고 용의자의 동선을 파악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테이저건과 고무탄 생산업체 등의 로비로 관련 법안은 치명적인 살상력이 있는 무기가 아니라면 탑재할 수 있도록 수정돼 하원을 통과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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