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웅, 한 번 쯤 센 캐릭터 아니라도 괜찮잖아?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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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개봉한 영화 '오피스(홍원찬 감독)'에선 전혀 다른 얼굴의 배우 박성웅(43)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영화 '신세계' 이후 박성웅의 이미지는 무겁고 강렬했다. '살인의뢰'·'황제를 위하여'·'무뢰한'에서도 그랬다. 그런 그에게 붙여진 수식어는 신 스틸러. 상대 배우가 누구든지 자신이 출연한 신을 장악하며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다. 하지만 '오피스'에선 센 박성웅은 찾아볼 수 없다. 극의 무게감을 잡지만, 작품에서 튀기 보다는 녹아드는 역할이다. 극 중 그는 일가족을 살해하고 종적을 감춘 김병국 과장의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종훈 역을 연기한다. 촬영하는 동안 안 튀려고 감독이 뭘 요구해도 최대한 안 하려고 했죠. 덕분에 캐릭터가 작품 속에 잘 녹아든 것 같아요. 계속 센 캐릭터만 할 순 없잖아요. 정말 선한 것도 해보고 이번처럼 묻어가는 역할도 하고 그래야죠. 이러다가 또 기깔난 악역이 들어오면 그건 또 해야죠."

-'오피스'를 선택한 건 의외다. 비중도 크지 않고, 연기를 많이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도 아니다.

"센 캐릭터가 아니라서 결정했다. 이번엔 작품 속에 녹아들고 싶었다. 안 튀려고 했는데 성공한 것 같지 않나? 배성우만 돋보이지 않았나? (웃음) 최대한 안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시나리오에 적힌 것 보다도 더 안 보여주려고 했다. 감독이 현장에서 뭘 요구하면 '튀면 안된다'며 거절했다. 극 전체를 위해 절대 튀면 안되는 캐릭터였다. 경비원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장면이 있었는데 너무 크게 놀란 것 같아서 오히려 조금만 놀라는 걸로 다시 찍었다. 그 정도로 안 튀려고 노력했다."

-분량이 아쉽진 않았나.

"절대. 분량을 이미 알고 촬영에 들어갔는데 뭐가 아쉽겠나. 이번엔 생활 연기에 비슷한 걸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가 끝난 후 '그런데 박성웅은 뭐했지?'라는 느낌을 주는 게 내 목표였다."

-다음 작품에서 선한 역할을 하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작품을 선택한건 아닌가.

"그렇게 머리가 똑똑한 편은 아니다. 그냥 여러가지 캐릭터를 소화하고 싶었을 뿐이다. 센 것만 할 수 없지 않나. 정말 선한 역할도 하고 더 나쁜 역할도 하고 그러고 싶다."

-사촌 형인 배우 김의성이 직접 캐스팅을 했다던데.

"'살인의뢰'를 찍을 때 였는데 이미 '오피스' 캐스팅이 거의 다 마무리된 단계였다. 종훈 캐릭터만 딱 비워져있었다. '오피스'에 출연하기로 한 의성이 형이 '네가 같이 하면 좋겠다. 가만히만 있어도 좋을 것 같다'며 영화를 추천해주더라. '생각 좀 해보겠다'고 답한 뒤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아 바로 출연을 결정했다."

-오랜만에 작품에서 액션 연기를 안 했다.

"정말 편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촬영장에서 편하게 찍었다. 촬영장에 어떤 분이 왔다갔다하는데 보조 출연자인 줄 알았다. 알고보니 무술 감독님이시더라. 이번에 몸으로 하는 연기와 액션 자체가 없다보니 무술 감독님을 뵐 일이 없었다. 작품을 하면서 무술 감독님과 시간을 보내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인상이 강한 편인데.

"무슨 소리. 어릴 땐 선한 인상이란 말을 듣고 자랐다. (기자가 이 말에 웃자) 왜 웃나. (웃음) 눈이 작아서 강해보일 수 있다. 어릴 땐 순하고 존재감도 없고 선한 이미지였다. 시골 아이처럼 해맑고 마냥 웃는 아이였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에 왔는데 그때부터 조금씩 변했다. 무시당하는 걸 싫어했고 쉽게 보이면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말 안하고 10년 동안 무표정한 표정으로 지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주변에 아무도 없더라. 내게 말을 거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작품을 하면서 친밀감 있어 보이려고 말도 많이 하고 웃기도 많이 웃고 그랬다."

-고아성과의 호흡은 어땠나.

"이렇게 선배를 안 어려워하는 배우는 처음이다. 아성이가 참 괜찮은 친구더라. 착한데 영리하고, 어떤 상황에서 자기가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를 잘 아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성이가 촬영장에서 참 귀여웠다."

-'신세계'를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어야된다는 압박감은 있나.

"아직도 '신세계' 이중구 대사 패러디를 한 게 많이 나온다. '내가 소맥은 말아 드릴게' 등 다양한 패러디가 있다. 이중구와 '신세계'는 항상 내 옆에 있는 것 같다. 지금도 있지만 언젠가 넘어야될 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엔 방송 인터뷰를 할 때 '신세계' 대사 패러디를 시키면 양해를 구하고 이건 좀 빼달라고 얘기한다. 너무 계속 하면 보는 분들도 짜증나지 않겠나. 슬슬 중구를 떠나보낼 때가 됐다."

-다른 장르에 대한 욕심도 있을 것 같은데.

"물론이다. 코미디를 하고 싶다. 내가 망가지는 캐릭터를 하는 건 안 웃긴다. 멀쩡해 보이는데 2% 부족한 허당을 연기하면 재밌을 것 같다. 코미디 쪽은 꼭 해보고 싶다."

-그래서 tvN 'SNL코리아'에도 출연했던 건가.

"그건 아니다. 'SNL코리아'는 CJ에 대학 후배가 있는데 그 후배가 진급을 하면서 'SNL코리아' 시즌5 첫 호스트로 나를 이미 섭외했다고 회사에 보고했다고 하더라. 난 분명히 안 나가려고 했는데 그 후배한테 욕을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갔다. 그래도 촬영하는 동안엔 행복했다."

-의리로 출연하는 게 많은 것 같다.

"'남자가 사랑할 때'도 '동창생'도 의미로 출연했다. '남자가 사랑할 때'는 '신세계' 조감독의 입봉작이라 출연하게 됐다. '오피스'도 의성이 형 추천이 있었으니깐 그것도 일종의 의리였다. '무뢰한'도 '검사외전'도 다 친분과 인연으로 출연했다."

-후배들에게 오디션 기회를 준다고.

"내 코가 석자라 누굴 낙하선으로 작품에 넣을 깜냥은 안된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좋은 후배를 감독이나 제작사에 소대해주려고 한다. 공정하게 오디션을 볼 기회만 주는 것이다. 오디션을 봤는데 내가 추천한 배우가 적합하지 않다면 캐스팅을 안하는 것이고, 괜찮으면 캐스팅이 되는 것이다. 그건 그 배우와 감독의 몫이다. 개인적으로 연극영화과 출신도 아니고(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과 졸업) 신인 때 나를 앞에서 끌어주는 선배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게 약간 트라우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가면 좋은 후배들을 내가 출연하는 작품에 추천은 해줘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빠 박성웅의 모습도 궁금하다.

"다정한 아빠다. 전혀 권위적이지 않다.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육아하는 방법을 보고 따라하기도 했다. 아이가 울면 아이의 손 발을 잡고 지쳐서 그만 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야기를 하라고 하더라. 아이가 4살 때 식탁에 있는 접시를 하도 떨어뜨려서 깨뜨리길래 혼을 냈다. 아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지쳐 우는 모습을 5분 지켜보다가 '내가 뭐하는 짓인가'싶고 울컥한 마음에 화장실로 뛰어가서 펑펑 울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아들을 보는데 아들이 오히려 내 눈물을 닦아주더라. 이렇게 착한 아들에게 내가 무슨 짓을 했나 싶었다. 지금 아이가 6살인데 얌전하고 굉장히 착하다. 엄마랑 같이 tvN '미생' 포상휴가를 갔는데 이성민 선배한테 '오차장님'이라고 불러 사랑을 듬뿍 받았다더라.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와 놀고 좋은 추억을 많이 쌓고 싶다. 친구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

김연지 기자 kim.yeonji@joins.com

온라인 중앙일보 jst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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