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명 저마다 맘껏 소리 질러, 다듬으면 재미없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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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전성기 남성 성악가들의 합창단 ‘이 마에스트리’ 단원들. 왼쪽부터 바리톤 박정민·김태성, 테너 이성민, 지휘 양재무, 테너 이규철·김지호·이승묵. 이들은 “독창 후엔 박수를 받지만 합창 후엔 환호성을 받는다”고 합창의 매력을 설명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남성 성악가 수십 명이 10년째 합창을 하고 있다. 한 명 한 명 오페라 무대에서 주역을 맡는 이들이다. 이들이 모이는 이유는 뭘까. 다음과 같은 답을 예상할 수 있다. ‘내 소리 대신 우리 소리를 만드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라고. 혹은 ‘여러 사람이 모여 하나의 음색을 만들었을 때 희열 때문’이라고 말이다.

 남성 합창단 ‘이 마에스트리’ 단원들은 정반대로 답했다. ‘내 소리를 마음껏 낼 수 있어서’다. 이 합창단의 소리는 독특하다. 절제라는 게 없다. 성악가 개인이 자신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최대한 낸다. 통일된 음색도 없다. 소리 하나하나가 튀어나온다. 가끔은 한두 명 목소리가 합창을 뚫고 나와 감상을 방해할 정도다. 한마디로 거칠고 화합이 안 되는 소리다.

 합창의 고정관념을 깨며 10년째 왔다. 2006년 첫 공연 후 매년 정기연주회를 했고 이달 열 번째 무대를 앞두고 있다. 올해 무대에 서는 성악가는 72명. 그중 7명을 만나 합창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소리를 정제할수록 합창의 매력은 떨어진다.” ‘이 마에스트리’를 기획하고 이끈 양재무(55·지휘)씨의 말이다. “성악가들이 모여서 낼 수 있는 소리의 힘이 10이라면 한국 합창단 대부분은 2~3정도밖에 못 낸다”고 덧붙였다. 정제돼 버려지는 소리가 아까워서 그는 마음껏 부르기를 주문했다. 아름답게 다듬어진 소리보다는 통쾌하고 시원한 음악을 들려준다는 생각이다. 단원 김태성(41·바리톤)씨는 “기존 합창단들의 소리가 산들바람이라면 우리는 폭풍의 소리를 추구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미국 LA의 월트디즈니홀에서 열린 ‘이 마에스트리’ 공연 모습. [사진 이마에스트리]
 단원 박정민(41·바리톤)씨는 이탈리아에서 콩쿠르 30개에 입상했다. 그중 12개는 우승이다. 그는 “내가 특별하다기보다 요즘 한국 성악의 기세가 이 정도”라며 “대부분 해외 콩쿠르에 여러 번 입상한 성악가들이 모였다”고 소개했다. 단원 전체의 콩쿠르 입상 실적을 합치면 대단한 숫자가 된다. 그래서 ‘이 마에스트리’는 한국 성악가들이 노래 잘하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체다. 원로 성악가 이인영(86) 선생은 이들을 두고 “세계 수준에 도달한 우리 음악의 현주소”라고 평했다.

 한국 성악의 힘을 보여주려 해외 공연을 꾸준히 했다. 2008년 도쿄, 2009년 러시아, 2010년 대만, 2012년 베이징 등 지금까지 외국에서 9차례 공연했다. 특히 지난달 미국 LA의 명문 공연장인 월트디즈니홀에 섰다. 단원 이규철(40·테너)씨는 “독일 레겐스부르크 오페라 극장에서 전속가수로 8년 노래했는데 한때는 주역 3인방이 모두 한국 사람이었던 적도 있었다”며 “이렇게 흩어져서만 노래하기에는 한국 성악가들의 실력이 아까워 합창단으로 해외에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묵(43·테너)씨는 “이렇게 한창 때의 오페라 가수들이 한자리에서 노래할 일은 거의 없다”고 했다. 단원은 모두 30~40대. 성악가로 전성기다. 이씨는 “‘이 마에스트리’에서 노래하면 동료들의 쟁쟁한 소리가 귀에 다 들어온다”고 말했다. 여기에 자기 소리를 비교해 보며 스스로 실력을 가늠한다. 이성민(39·테너)씨는 “‘이 마에스트리’의 연습은 성악가들에게 부담스럽고 살벌한 시간”이라며 “고음은 누가 더 잘 내는지, 소리는 누가 풍부한지 다 듣고 서로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성장한 성악가들은 혼자 노래할 때도 실력을 발휘한다. 양재무씨는 “한 성악가는 노래를 잘하는데도 오페라 무대에 설 기회를 몇 년간 잡지 못하다 ‘이 마에스트리’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후 여기저기에서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화합하는 소리 대신 개인이 튀는 소리를 만들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들은 11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창단 10주년 공연을 연다.

글=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 마에스트리=거장·장인이라는 뜻인 ‘마에스트로’의 복수형에 이탈리아어 관사 ‘이(i)’를 붙였다. 2006년 남성 성악가 45명이 모여 창단했다. 오페라 아리아, 한국 가곡·민요 등을 남성 합창단용으로 편곡해 피아노 반주로 노래한다. 매년 정기연주회를 열고 있으며 대통령 취임식(2008년), G20 정상회의 축하공연(2010년) 등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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