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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588> ‘인생 축소판’ 바둑 격언 10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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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정아람 기자

‘바둑이 인생의 축소판’이란 말이 있죠. 한 판의 바둑은 신통하게도 복잡한 인생사와 닮았습니다. 이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가 있는데요. 바로 바둑 둘 때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격언들입니다. 이 격언들을 바둑 둘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교훈 등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반상(盤上)의 말씀들은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인생을 일깨우는 바둑 격언 10가지를 소개합니다.

“우주 대자연의 음양원리를 원용한 바둑은 상대성을 추구하는 놀이다. 이를 즐기며 체득하는 동안, 인간은 우주 원리에 순응하는 법을 알게 되고 그로써 수명을 늘려 장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역사상 최초의 바둑책인 『기지(碁旨)』를 쓴 반고(班固)가 한 말이다. 바둑이 왜 인생의 축소판이 될 수 있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게 한다. 다음은 사람살이에도 도움이 될 법한 바둑 격언들이다. 이 중에는 일상 대화에서 흔히 쓰이는 말도 있다.

바둑은 단순한 집 짓기 싸움이 아니다. 그 안에는 인간의 희로애락과 흥망성쇠가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바둑둘 때 경계해야 할 마음가짐과 교훈 등을 담은 바둑 격언은 우리네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중앙포토]

1 일수불퇴(一手不退)

바둑 헌법 1조 1항은 ‘일수불퇴’다. 한 번 놓은 돌은 절대 무를 수 없다는 뜻이다. 돌을 바둑판에 내려놓는 순간, 다시 돌을 집어 다른 곳에 둘 수 없다. 최근 바둑 규정이 더 엄격해지면서 돌을 다시 놓을 경우 가차없이 반칙패 처리된다. 무를 수 없는 건 인생도 마찬가지다. 일단 선택해 발을 내딛었다면 내 길을 묵묵히 걸어야 한다. 어떤 길이 더 좋은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것은 모두 ‘가지 않은 길’이다. 혹여 잘못된 선택을 했다 해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일수불퇴’는 바둑과 인간사에 모두 통용되는 제1조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2 반외팔목(盤外八目)

바둑 격언 중에 ‘반외팔목’이라는 말이 있다. 바둑을 직접 두는 사람보다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여덟 집 정도는 유리하다는 뜻이다. 바둑판 앞에 있는 사람은 감정이나 승리욕에 휩쓸려 수의 변화를 냉정하게 보지 못한다. 실제로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많이 한다. 바둑 둘 때 가까이 들여다보면 도저히 보이지 않던 수가 바둑이 끝난 다음 복기(復棋)할 때는 쉽게 보인다. 이미 승패가 내 손을 떠나 마음이 평온해졌기 때문이다. 고수들이 두는 바둑을 옆에서 구경하던 하수가 ‘이런 수가 있다’며 훈수(訓手)할 때도 있다. 이 격언이 인생에 가장 잘 적용되는 경우는 바로 연애다. 남의 연애를 보면 모두 뻔해 보인다. 하지만, 정작 내가 연애를 할 때는 정신 못 차리고 허우적거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3 남의 집이 커보이면 바둑 진다

바둑은 상대보다 반집만 많아도 이기는 승부다. 굳이 욕심을 부려 많은 집 차이를 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바둑을 두다 보면 과욕 때문에 승부를 그르치는 일이 많다. 충분히 유리한 형세임에도 몇 칸 안 되는 남의 집을 깨러 들어갔다가 몽땅 망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바둑에서도 인생에서도 과욕은 언제나 금물이다. 남의 것을 탐내다가는 내가 가진 것도 잃을 수 있다.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알고 현재에 만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승부에 임할 때는 물론 인생을 살아갈 때도 필요한 격언이다.

4 선작오십가자필패(先作五十家者必敗)

‘50집을 먼저 짓는 사람이 진다’는 뜻이다. 바둑에서 50집은 엄청나게 큰 집이다. 먼저, 50집을 확보하면 절대 우세라고 판단하고 방심하게 된다. 방심하면 자만하기 쉽고, 자만하면 자꾸 상대에 양보하며 쉬운 길로 가게 된다. 이와 달리 상대는 불리한 대국을 타개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기에 ‘아차’하는 순간에 국면이 뒤집힐 수 있다. 비슷한 격언으로는 ‘대마 잡고 (바둑에) 진다’는 말이 있다. 일찍 상대방의 대마를 잡고 승리감에 도취해 있다가 역전패당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두 격언 모두 바둑의 승패에는 심리적인 변수가 크게 작용함을 역설적으로 일깨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초반에 잘나간다고 방심하다가 거꾸러지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5 잡고 싶은 반대편을 공격한다

비슷한 실력의 상대와 대국하면서 상대방 말을 잡기는 매우 어렵고 드문 일이다. 그래서 바둑에서 상대 말을 공격할 때는 먼저 목표물의 반대쪽을 공격해 나의 세력을 형성해 놓은 다음, 목표물을 에워싸듯 공격하는 것이 요령이다. 이는 현명한 처세술과도 통한다. 목표물을 향해 무조건 돌진하기보다는 미리 주변에 ‘밑밥’을 깔아놓는다면 원하는 것을 더 쉽게 얻을 수 있다. 병법(兵法)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바로 ‘도남의재북(圖南意在北)’과 ‘성동격서(聲東擊西)’다. ‘도남의재북’은 남쪽을 도모하지만 그 뜻은 북쪽에 있다, ‘성동격서’는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뜻이다.

6 부득탐승(不得貪勝)

‘부득탐승’은 당나라의 바둑 고수 왕적신(王積薪)이 정리했다고 전해지는 열 가지 바둑 전략 ‘위기십결(圍棋十訣)’의 첫째 항목이다. ‘승리를 탐하지 말라’는 말이다. 바둑은 승리를 다투는 게임이므로 이기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러나 너무 목적에만 집착하면 오히려 바둑을 그르칠 수 있다. 이기려는 마음이 지나치게 강하면 욕심에 눈이 멀어 정확한 수를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바둑에서 최선의 마음가짐은 ‘평정심’이다. 평정심의 대가이자 ‘돌부처’가 별명인 이창호 9단은 2011년 출간한 자서전 제목으로 ‘부득탐승’을 썼다. 하지만, 사람인 만큼 이겨야 하는 승부에서 승리를 탐하지 않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인생에서 목표를 위해 달리다 보면 결과에 치우쳐 과정을 소홀히 하기 쉬운 것처럼 말이다. 그만큼 어려운 득도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7 사소취대(捨小就大)

‘위기십결’의 다섯 번째 계명이다. ‘작은 것은 탐하지 말고 버리고 큰 것을 취해야 한다’는 뜻이다. 바둑을 둘 때는 눈앞의 작은 이득을 탐내지 말고 대세를 보며 크게 움직여야 한다. 말은 쉽지만 막상 바둑을 두다 보면 정말 쉽지 않은 것이 ‘사소취대’이다. 작은 이익은 눈앞에 보이는 반면 큰 이익은 멀리 있어 얻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일맥상통하는 말로는 ‘기자쟁선(棄子爭先)’이 있다. ‘기자쟁선’은 ‘위기십결’의 하나로, 돌 몇 점을 버리더라도 선수(先手)를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선수를 차지하면 다른 큰 곳을 선점해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인생에서도 더 큰 그림을 보고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8 봉위수기(逢危須棄)

상대방이 강한 곳에서는 부담 되는 돌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위기십결’의 여섯 번째 계명이다. 바둑을 두다 보면 양곤마가 돼 쫓기는 경우도 있고, 미생마(未生馬)가 여러 개 생길 때도 있다. 작은 돌을 살리려다가 더 큰 대마를 죽이기보다는 아낌없이 돌을 버리고 다른 곳에서 만회하는 것이 좋다. 혹시 곤마를 살릴 수 있더라도 대가를 크게 치러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모든 걸 다 짊어지고 가려다간 어깨가 짓눌려 멀리 가지 못한다. 감당할 수 없다면 기꺼이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가벼운 걸음으로 새출발을 할 수 있다. 버려야 할 때는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9 동수상응(動須相應)

tvN 드라마 ‘미생’에는 ‘바둑판 위에서 의미 없는 돌은 없다’는 장그래의 대사가 나온다. 정말 그러하다. 바둑판 위에 놓인 돌들은 이리저리 흩뿌려져 따로 노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한 수 한 수가 주변과 호응하며 저마다 의미와 중요성을 갖는다. 착점 이후 돌의 의미가 고정되는 것도 아니다. 대국이 진행되면서 돌의 가치와 생명력은 시시각각 변한다. 몇십 수 전에 놓았던 돌이 곤마를 살리는 요석(要石)이 되듯, 주변 환경에 따라 악수(惡手)와 좋은 수는 달라질 수 있다. 바둑을 둘 때는 인생에서처럼 전반적인 국면을 살피면서 조화와 능률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수를 찾아야 한다. ‘동수상응’은 돌이 움직일 때는 주위의 돌과 호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위기십결’의 여덟 번째 계명이다.

10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아생연후살타’는 ‘내가 먼저 산 뒤 남을 죽이라’는 말이다. 바둑판 위에서 내 말을 대신 보살펴주는 상대는 없다. 스스로 내 말이 약하지 않은지, 상대로부터 반격당할 여지가 없는지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특히 상대를 공격할 때는 감정이 앞서기 쉬운데 이럴 때일수록 냉철하고 비판적으로 자신의 말부터 돌아봐야 한다. 자기 말의 생사를 돌보지 않고 무리하게 공격하다가는 역습을 당해 망하기 십상이다. 비슷한 말로는 ‘위기십결’의 ‘공피고아(攻彼顧我)’가 있다. 상대방을 공격하려면 먼저 자신에게 허점이 없는가를 살피라는 뜻이다. 반상에서도 세상에서도 내가 먼저 살아야 상대를 요리할 수 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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