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방송 “비 온다” 하면 북 주민들 즉시 빨래 걷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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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조선중앙TV가 바다 날씨를 예보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남한방송 내용 중 가장 신뢰하는 코너는 일기예보다. 평양의 관영매체보다 북한 지역 기상정보를 더 잘 맞히기 때문이다. 최전방 부대의 북한군 병사들이 우리 대북 확성기 방송(8·25 합의에 따라 현재는 중단)에서 비가 올 것이란 예보가 나오면 즉시 빨래를 걷는 광경이 목격되기도 했다는 게 국방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북한의 일기예보가 주민들로부터 외면받는 건 예보장비나 기술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 기상관측과 예보를 담당하는 북한 기관은 기상수문국이다. 장비 대부분은 1950~60년대 구소련이나 일본에서 들여온 것으로 낙후됐다. 지난해 6월 기상수문국을 현지지도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기상관측사업이 현대화·과학화되지 못한 결과 오보가 많다”고 지적하고, 이를 관영 매체들이 그대로 보도할 정도다.

 최근 들어 북한TV의 일기예보는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젊은 남녀 기상캐스터가 등장했고, 구름 사진이나 기상도를 화면으로 보여준다. 그렇지만 기상예보에 장비나 인력을 투자하지 못하고 있어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산업을 비롯해 기상과 밀접한 부문에서는 제한적으로 남한 일기예보를 청취해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탈북자 출신인 김병욱 북한개발연구소장은 “김정은이 강조하는 수산물 증산을 위해 국가안전보위부에서 눈감아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cy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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