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대통령 전용機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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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해외 순방 때 타는 비행기는 두가지다. 진짜 대통령 전용기는 'Republic of Korea'라는 영문이 선명한 보잉 737기다. '공군 1호기' 또는 '코드 원'으로 불린다. 4~5시간 비행이 가능해 이번 방일 등 중국.동남아 순방에 투입된다. 대통령 침실.집무실을 꾸며 공식 수행원 등 40여명만 탈 수 있다.

방미 때는 대한항공에서 빌린 보잉 747-400 기종의 '특별기'였다. 영어가 탁월하고 도착지인 앤드루스 공군기지 착륙 경험이 있는 '탑건' 조종사 4명이 교대로 조종간을 쥐었다.

뉴욕 JFK공항에선 활주로의 짙은 해무(海霧)를 뚫는 고난도의 착륙을 했고, 직후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이 금지됐다. 비상시에 대비, 공군연락관도 일반 장교 대신 조종사를 탑승시켰다. 위성통신시설도 언제나 장착된다.

트윈 베드의 대통령 침실과 집무실 앞엔 경호과장 등 정예 경호원 2명과 검식(檢食)과장이 자리를 지켰다. 대통령 메뉴는 청와대가 식단을 주문, 항공사가 준비한다. 체력.미모.어학을 갖춘 정예 여승무원과 비상시 진두지휘 겸 '안전의 상징'으로 항공사 대표가 동행한다.

전용기는 국력과도 비례한다. '에어 포스 원(Air Force One)'이라 불리는 보잉 747-200Bs의 미 대통령 전용기는 세계 누구와도 송.수신하는 통신시설, 레이더 교란.미사일 방어 섬광발사 장치를 갖췄다. 5억달러에 이른다. 일본은 요격을 헷갈리게 하려고 2대의 747-400 기종을 띄운다.

'하늘에서의 결정'은 역사를 수차례 바꿨다고 최근 유에스 뉴스 앤 월드리포트에 소개된 케네스 T 월시의 저서 '에어포스 원에서'는 지적한다. "대통령은 전용기 안에서 지상의 언론은 물론 어느 곳과도 차단되는 사색의 공간, 정적의 오아시스를 얻게 된다"는 결론이다. 다양한 진면목도 나타난다고 했다.

글이라곤 쓸 것 같지 않은 장난기.다변(多辯) 이미지의 레이건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과의 역사적인 레이캬비크 정상회담행 기내에서 장시간 홀로 메모를 했다. 회담 불발 뒤 귀국 기내에서 참모들이 결렬 배경을 설명하는 대 언론 자료를 만드느라 법석을 떨 때도 그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곰곰이 반추했다고 한다.

盧대통령의 스타일은 어땠을까. 방미 후 기내에서 盧대통령은 참모들과 3시간여 결산 토론회를 가졌다. 미국행 기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이 불거질 정도로 열띤 토론도 있었다"는 전언이다. 외교통상부 장관 등의 조언을 수용, '유화적 대미 발언'을 결심한 것도 기내였다.

과거 대통령들이 경호원들에게 싸여 홀로 기내 인사를 다닌 것과 달리 별다른 '호위'없이 부인 권양숙 여사를 대동한 모습은 전용기 관계자들의 인상에 남았다. '토론.소탈'의 땅 위 이미지 그대로였던 셈이다.

7월 중국, 8월 러시아로 날아갈 전용기는 盧대통령이 어지러운 국정 상황의 진정한 이유와 해법을 조용히 성찰해 볼 '사색의 공간'으로 삼았으면 싶다.

최훈 청와대 출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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