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월드]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논란 왜 계속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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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 4월 9일 미군이 바그다드를 함락하며 이라크전이 사실상 끝난 지도 벌써 두달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는지 없는지를 놓고 국제 사회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량살상무기 논란은 왜 벌어지는지, 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대량살상무기(WMD)로 논란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내세운 명분 중 가장 큰 게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없앤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량살상무기는 독가스.탄저균.핵폭탄처럼 한번에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는 비인도적인 화학.생물.핵무기를 말합니다. 국제사회는 대량살상무기가 인류사회에 극히 위험한 무기라고 판단해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같은 약속들을 만들어 생산이나 개발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이런 무기들을 몰래 감춰놓고 유엔과 세계 국가들을 속이고 있다는 이유로 공격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바그다드 함락 후 미국이 이라크에서 두달 넘게 조사를 했는데도 그런 무기들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면 이라크전을 일으킨 제일 큰 명분도 사라지는 겁니다. 더구나 미국을 비롯, 세계 각국의 언론들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정보를 과장하거나 왜곡해 공격의 명분을 만들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판이 사실이라면 미국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면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유일 초강대국으로 세계를 이끌어가는 미국의 정당성이 크게 훼손됩니다. 북한과 이란 등을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 국가로 지목하고 국제적인 압력을 높여가는 미국의 도덕적 지도력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2. 그러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이 과장됐다는 근거가 있습니까.

구미 언론들은 여러가지 예를 들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국정 연설에서 "사담 후세인이 아프리카 국가로부터 핵무기 원료인 우라늄을 몰래 사들이려 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조사한 결과 이 정보가 사실이 아니라고 보도했습니다. 가짜 서류에 속았다는 겁니다.

지난해 9월에는 이라크가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알루미늄관을 몰래 수입하려 한다는 첩보가 공개됐습니다. 그러나 당시 국무부 정보기관의 한 관리는 "국무부는 핵무기가 아니라 미사일 제조용이라고 결론을 내렸다"는 겁니다.

미국 정부는 이런 보도나 주장에 펄쩍 뛰고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얘기"라는 거죠.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나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철저하게 숨기거나 없앴기 때문에 발견되지 않는 것"이라고 일축합니다. 시간이 걸릴 뿐이지 그 증거는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는 얘깁니다.

3. 그럼에도 미 언론들이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정보가 과장됐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뭡니까.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나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등 매파들이 CIA 등 미 정보기관이 수집한 정보들을 확대 해석했다는 겁니다. 럼즈펠드 장관은 1998년 의회의 '탄도미사일 위협 위원회'의 의장으로서 CIA가 이라크.북한.이란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현황을 신속히 수집하지 못한다고 비난했던 전력이 있습니다.

울포위츠 부장관도 76년 미 행정부가 한시적으로 자체 정보기관의 정보 판단을 평가하기 위해 민간인 전문가들로 구성했던 'B팀'의 일원으로 참가해 CIA가 소련의 군사 능력을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즉 일선 정보기관의 정보 수집 능력에 비판적인 견해를 보여왔던 국방부의 강경파들이 정보기관의 보고를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했고, 그 결과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이 매우 심각하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정보기관 책임론도 있습니다. 미 정보기관들이 정확한 대량살상무기 정보를 얻어내지 못해 미 지도부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위험을 과대 평가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4. 대량살상무기가 있건 없건 미국은 전쟁에서 이겼으니 별 영향이 없는 것 아닌가요.

91년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때는 유엔의 승인이라는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안전보장이사회가 "무력 사용을 허용한다"는 678호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반면 이번에는 안보리에서 무력 사용을 결의하지 않았습니다. 안보리 이사국인 프랑스.러시아.중국 등이 전쟁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미국은 유엔을 통하지 않고 영국.스페인.호주 같은 나라들을 규합, 전쟁에 나서며 미국이 맘을 먹으면 이를 막을 국제기구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든 발견되지 않든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힘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지 못한다면 미국은 반전 여론의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사회의 입장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다시피 했기 때문입니다. 또 앞으로는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번 신뢰를 잃은 사람이 다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입니다.

예컨대 미국이 북한과 이란에 대해 무력행사와 같은 극단적인 수단을 쓰려 한다면 다른 나라들이 거세게 반발할 공산이 커집니다. 이번에는 핵무기를 개발하려 하는지 먼저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이미 이달 초 서방 선진국가와 러시아의 정상들이 'G8(서방 선진7개국+러시아)회담'으로 모여 '북한.이란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추가 조치도 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을 때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추가 조치는 무력 사용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미국 국내적으로도 의회의 청문회 등이 개최되면 부시 행정부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야당 등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반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군이 장기 주둔을 계획하고 있는 이라크에서도 이라크인들이 '이유없는 전쟁'을 한 미군은 빨리 철수하라며 미 군정에 노골적으로 반발하고 나설 수 있습니다.

5. 그렇다면 지금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미국은 현재 1천4백여명에 이르는 '이라크 사찰단'이라는 자체 인력을 이라크에 보냈습니다. 사찰단은 미 국방부에서 지휘합니다. 유엔 감시.검증.사찰 위원회 사찰단 인력 3백여명에 비교하면 네배를 넘는 규모입니다.

미국이 대량살상무기 의혹시설로 꼽은 장소는 핵발전소.군수공장.연구소.화학단지 등 9백여곳에 이릅니다. 이 중 3백곳 정도만이 조사가 끝났다고 합니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대량살상무기가 있다 없다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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