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수출 부진, 어떻게 볼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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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호 18면

지난 1일 발표된 8월 수출실적은 참담했다. 저유가로 석유화학제품 수출액이 40% 감소했고 선박수출이 지연됐다지만, 작년 8월에 비해 14.7%나 줄면서 6년 만에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세계경제가 리먼사태 같은 위기를 겪는 것도 아니고, 외부여건 면에서도 수출이 이토록 힘을 못 쓰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 경제에서 외부 환경 악화라고 하면 대부분 환율과 유가의 문제였다. 원화가 급격히 강세를 띠거나 국제유가가 급등할 경우 우리 경제가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는데 지금은 그 반대 상황 아닌가? 전통적이고 표준적인 경제이론이 적용되지 않는 다소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의 수출부진을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을 듯싶다.


유가 급락이 호재로 작용 안 해먼저, 이미 익숙해졌지만, 유가 급락이 원유 수입국 경제에 호재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하락은 원자재·자원 수입국에는 가계의 구매력이 높아지고 기업의 원가부담이 경감돼 호재로 작용했다. 그렇지만 이번의 경우 원자재 가격이 셰일오일의 대량생산과 같은 구조적 요인에 의해 큰 폭 하락해 산유국 등 원자재 수출국 경제가 망가지면서 한국을 비롯, 세계경제에 악재가 되고 있다. 유가 하락에 따른 긍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산유국들의 수요가 급감하는 부정적인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강일구 일러스트

환율효과도 마찬가지다.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면서 신흥국들의 통화가 크게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수출 증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반면 자국통화표시 수입가격은 높아져 이 나라들의 수입이 줄어들고 있으며 세계교역부진 심화 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 수년간 각국 통화의 절하율과 1년 후 수출 실적 간 그래프를 그려보면 잘 나타난다. 결국 신흥국의 통화 약세는 수출증가 효과를 보지 못하지만 수입감소를 통해 경상수지를 개선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신흥국간 환율전쟁은 글로벌 교역의 국가간 재배분이 아니라 글로벌 교역을 수축시키고 세계경제 성장을 좀먹는 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 글로벌 수요 자체가 부진한 것이 근본원인이라는 데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만 세계은행(World Bank)은 글로벌 공급 사슬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한다. 통화 약세는 전체 수출품 가격이 아니라 수입부품을 뺀 나머지, 즉 국내에서 이뤄진 부가가치의 판매가격만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는데 글로벌 분업이 심화함에 따라서 국내 부가가치 비중이 더욱 작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저유가에도 유가하락 압력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각국의 성장둔화와 통화가치 하락 등으로 신흥국의 수요둔화가 예상되는데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증산 등 석유의 공급과잉이 이어질 전망이다. 여기에 이란에 대한 제재 해제로 공급과잉 개선이 지연되면서 유가의 추가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의 추가적인 약세가 이어질 경우 앞서 한국의 수출실적개선에 부담이 될 것이다.


유가 떨어져도 공급과잉 지속될 듯우리나라 수출이 세계교역의 선행지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도 큰 폭의 수출감소가 우려된다.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생산 사슬의 맨 위에 있다. 예컨대 중국의 스마트폰이나 미국의 랩톱 컴퓨터 수요가 줄어들 경우 우리나라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수요가 줄어들게 된다. 우리나라의 매크로 데이터를 통해 아주 빨리 감지되는 글로벌 산업사이클의 변화가 긍정적이지 못하다.


최근 글로벌 경제에 대한 논의에서 이슈가 되는 권역은 역시 신흥국이다. 세계경제 내에서 신흥국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시장환율 기준 38%, 구매력평가환율 기준 52%에 달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절반 수준 혹은 그 이하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수출시장에서 신흥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60%를 넘는다. 우리나라 수출이 고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 8월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와 이어진 글로벌 금융시장 혼란이 금융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신흥국의 고성장파티를 끝내고 성장지체라는 숙취에 시달릴 가능성은 크게 평가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 7월 전망에서 올해와 내년 신흥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낮춘 바 있다. 지난 5년간 3%대 초반에 갇혀있는 세계경제 성장세가 터널 밖으로 나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래 방향으로다.


신민영?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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