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인턴’이 뭔지 알아야 지원하지…탈북자 언어 수업 풍경

중앙일보

입력

“오마니(어머니)하고 오빠랑 같이 오징어를 사러 시장에 갔어요…어디선가 우막(음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구디(굳이) 돈을 주고 구경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오징어’인지 ‘어징어’인지 ‘오’와 ‘어’를 구분하기 힘든 발음. 일종의 시험이라 더 긴장해서일까. 식당에서 들려오는 중국동포 아주머니 억양 비슷하면서도 그보다 더 딱딱한 느낌이 늘었다. 지난 2일 첫 수업을 시작한 부산외국어대의 북한이탈 주민 대상 발음 바로잡기 교육 모습이다. 전화하면 보이스피싱으로 오해받기 십상인 억양. 그래서 직장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어려움과 서러움을 겪는다는 탈북자들을 위해 만든 과정이다.
실제 첫날 수업에 온 탈북자들은 저마다 고충을 겪었다. 2012년 5월 한국에 온 박민수(21)씨는 이런 얘기를 털어놨다.

“식당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죠.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를 수십 번 연습했는데도 그것만 듣고 손님들이 대뜸 묻는 거예요. ‘중국동포냐’고. 처음엔 ‘북한에서 왔다’고 했죠. 그러면 ‘김정은을 본 적 있느냐’는 등등 질문이 계속 쏟아져요. 그래서 지금은 그냥 체념하고 중국동포 행세를 합니다.”

2010년 탈북한 윤정희(36ㆍ여)씨는 일종의 트라우마에 걸렸다.

“대학 발표 수업 때였어요. 제법 오래 얘길 했는데 누군가 대뜸 ‘북한말투 좀 안 쓰면 안 되겠느냐. 듣기가 좀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갑자기 말문이 막혔어요. 그 뒤로는 겁이 나서 지금까지도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못해요.”

생소한 외래어 또한 만만찮은 걸림돌이다. “회사에서 ‘인턴’을 많이 뽑던데, 도대체 인턴이 뭔지 몰라 지원을 못했다”는 게 탈북자들의 경험담이다. 박철훈(45)씨 역시 외래어 때문에 좌절했다. “휴대전화 요금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어요. 큰 맘 먹고 상담원에게 전화했더니 젊은 아가씨가 아주 친절하게 받더군요. 처음엔 안심했는데 다음 순간 당황했어요. 데이터ㆍLTE…, 뜻모를 소리들이 한참 쏟아져 나오는데…. 결국 조용히 전화를 끊었습니다.”

첫날인 2일엔 학생 10명의 발음을 테스트했다. 다음부터는 개개인의 발음과 억양에 따라 1대 1 맞춤형으로 발음 바로잡기 수업에 들어간다. 하루 3시간, 주 2회씩 1달 과정으로 잡았다. 필수 외래어 어휘도 가르치기로 했다. 전에도 탈북자를 대상으로 억양 바로잡기 강의를 해 본 오상민(32ㆍ한국어교육학 석사) 강사는 “한 달이면 탈북자들이 불편함을 훨씬 덜 느끼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곤 오 강사가 덧붙인 한 가지. 젊은이가 더 빨리 발음과 억양을 고치는 건 그렇다 치더라고, 전반적으로 여성들이 남성보다 학습 효과가 더 빨리 난다고 한다. 이것도 ‘남남북녀(南男北女)’일까, 아니면 민족에 관계없이 여성이 남성보다 뛰어난 언어 학습 능력을 가진 것일까.

부산=차상은 기자 chazz@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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