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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국력 상징하는 종합과학 … R&D 장기 지원 중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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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호 3 면

최양희 장관(왼쪽에서 둘째)이 휴보 랩을 방문해 오준호 교수(셋째) 등 연구진과 과학기술 발전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좌담회에선 정부의 장기적 지원과 과학문화 조성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신동연 객원기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으로 국내가 어수선했던 6월, 미국에서는 승전보가 울렸다. 미국 방위고등연구기획국(DARPA)이 주관하는 ‘재난로봇경진대회(DARPA Robotics Challenge?DRC)’에서 KAIST 오준호 교수팀의 ‘휴보’가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휴보는 미래창조과학부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선정한 과학기술 대표 성과 70선에도 꼽혔다. 27일 미래부 최양희 장관이 연구진을 독려하고 휴보의 기술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휴보 랩(HUBO Lab)을 방문했다. 이날 자리에서는 최 장관, ‘휴보 아버지’ 오준호 교수, 휴보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했던 레인보우의 이정호 대표가 우리나라 로봇 기술의 현주소와 과학기술의 발전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휴보는 미래창조과학부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선정한 ‘과학기술 70선’에 대표 성과로 꼽혔다. 선정 배경과 기준은.


?최양희 장관=올해가 광복 70주년이다. 과학기술이야말로 우리나라가 발전한 배경이다. 그래서 국민·전문가가 생각하는 한국을 이끈 과학기술 70개를 선정했다. 기준은 세 가지다. 과학기술 그 자체로 성과가 우수하고, 사회·경제적으로 파급효과가 커야 한다. 시대별로 대표성도 있어야 한다. 친근하면서도 인상적인 과학기술을 꼽았다.


?사회=올 6월 열린 DRC 우승은 한국 과학계의 쾌거다. 연구자로서, 또 주무부처인 미래부 입장에서도 의미가 클 텐데.


?오준호 교수=한국이 기술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미국·유럽·일본이 로봇 기술을 선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쫓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 로봇 기술은 여전히 세계 변방이다. 이번에 DRC를 통해 로봇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최 장관=휴보가 출전해 우승한 DRC는 미국 최고 연구지원기관인 DARPA에서 주최한 행사다. 그런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올 7월 말 미국 과학기술정책 최고 책임자와 미팅할 기회가 있었는데, 거듭 휴보에 대해 칭찬하고 한국 기술력에 경의를 표했다. 매우 뿌듯했다. 투자를 늘리고 과학기술자에 대한 대우를 높여 과학경쟁력을 더 끌어올렸으면 좋겠다.


?사회=휴보가 지금에 오기까지 역경도 많았을 텐데.


?오 교수=인간형 로봇을 연구한 지 10여 년 됐다. DRC 참여를 결정한 건 2년 반 전이다. 그 사이에 예선(Trial)에 나갔다. 좋은 결과를 예상했는데 참패했다. 그때 우리의 수준을 절감했다. 그 경험과 오기가 동력이 됐다. 이번에 세계 최고 수준의 미국·일본 로봇이 맥없이 무너진 게 오히려 아쉽다.


?이정호 대표=예선 때 리더 역할을 맡았다. (회사 경영자로서) 도전 자체가 큰 투자였다. 상당히 두려웠지만 결과적으로 우승이라는 큰 보상을 받아 기쁘다. 큰 대회를 치르고 나니 자신감도 생겼다. 오 교수의 도움이 컸다.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우리 휴보가 있다. 대회 전에 이를 업그레이드하러 갔는데 미국 연구원이 우리를 얕잡아보더라. 그런데 파이널에 그 팀이 나왔다. 우리가 그들을 눌러 통쾌했다. ?사회=로봇과 과학기술이 가진 가치와 가능성은 무엇이라고 보나.


?최 장관=로봇은 종합과학이다. 기계·컴퓨터·재료·전자·정보통신 등 모든 기술이 포함돼 있다. 로봇산업의 수준이 높다는 건 그 나라 종합과학기술 수준이 높다는 의미다. 말로는 우리 로봇 기술이 세계 4위지만 여러모로 부족하다. 특화된 로봇 기술로 산업·기술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전략이 필요하다.


?사회=로봇 기술의 성장은 창조경제의 대표적인 연구성과라 할 수 있겠다.


?최 장관=창조경제란 남이 하지 못하는 분야를 과학기술로 돌파해 경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국민과 기업이 보유한 창의성이 도전을 통해 최대한으로 발휘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이로부터 새로운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전략이라 할 수 있다. 로봇 기술은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경제에 부합한다.

최양희 장관이 오준호 교수에게 과학기술 대표 성과 70선 인증패를 수여하는 모습.

?사회=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기술은 공학기술이 집약됐지만 사실상 기초과학이다. 모든 연구개발(R&D) 분야가 그렇지만 특히 기초과학은 연구지원이 중요한데.


?오 교수=로봇 기술은 고급 기술이다. 후진국은 엄두를 못 낸다. 기술 기반이 일정 수준 이상 갖춰져야 연구가 가능하다. 종합과학기술이면서 미래 가능성을 보는 기술이다. 5년, 10년을 내다보고 투자해야 하는 기술이다 보니 국력과 비례한다. 앞으로 뒤처지지 않으려면 기술을 창조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사회=그동안 정부 조직 개편으로 지원 부서가 계속 바뀌었는데.


?오 교수=그래도 정부 혜택을 많이 받았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얼마나 관심을 쏟느냐다. 불모지에서 10년이 넘는 시간을 꾸준히 지원받았던 게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동력이다. 정량·단기 평가보다 멀리 내다보고 꾸준히 연구하는 쪽을 지원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최 장관=지금까지는 양적 성장에 치중돼 있었다. 논문을 많이 쓰고 그것을 평가하는 시스템이었다. 열정을 가지고 한 주제에 몰입하기는 힘든 분위기였다. 미래부는 양이 아닌 질적으로 측정하려 한다. 논문 수로 평가하지 않겠다. 기초연구가 탄탄해야 응용도 되고 산업도 된다. 기초연구 예산을 지속 증액해 전체 연구비의 40% 수준까지 올리려 한다.


?사회=기업 입장에서 실용화·산업화에 대한 의견이 있을 것 같다.


?이 대표=사실 주도권이 있는 건 중소기업이 아니다. 중소기업은 아이디어를 내고, 시장을 형성하면서 이를 이끌어나가는 건 대기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기업은 (투자) 위험이 큰 시장엔 뛰어들지 않는다. 중소기업과 협업할 때 정부가 지원하면 대기업도 운신의 폭을 넓히고 상생할 수 있을 것 같다.


?최 장관=우리나라에서 창조경제가 붐을 이루고 있다. 많은 신생 기업이 시장에 나온다. 이들이 성공하기 위해선 저변을 넓히는 기술 연구가 활발해야 한다. 또 기술을 산업화하는 응용기술 개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창업 중소기업이 다양하게 성장하는 모델이 필요하다. 여기에 학계의 연구가 유입돼야 한다. 정부는 기업에서 필요한 기술을 학계가 제공하는 ‘기업 공감 원스톱 서비스’를 3개월간 시범사업으로 하고 있다. 2000건이 넘는 신청이 들어왔다. 지금까지 우리 과학기술계에서 간과했던 부분이다. 연구를 하면 열매를 얻어야 한다. 그게 새로운 정책 포인트다.


?사회=로봇이 발전하면서 삶의 질이 어떻게 변화할까.


?오 교수=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하는데, 로봇이 하는 일은 (사람에게는) 위험하고 어렵고 힘든 일이다. 사람을 로봇이 대체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하기 싫고 불가능한 걸 해주는 게 로봇이다. 로봇에게 빼앗기는 일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


?사회=과학의 저변 확대가 중요하다.


?최 장관=한국의 과학기술이 우수하다는 사실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 과학외교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이 뛰어나지만 저평가된 면이 있다. 그러기 위해선 각 분야에서 명성을 쌓아야 한다. DRC 우승, 국제해킹방어대회 우승, 올림피아드 수상처럼 말이다. 노벨상을 못 받았다고 위축돼서는 안 된다. 국민 인식이 점점 달라지면 문화적으로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과학문화가 있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과학에 노출되고, 과학을 즐기며, 호기심을 키우는 문화 말이다. 또 과학 선진국에선 공상과학소설이 무수히 출판되고 많은 사람이 이를 즐긴다. 우리나라는 과학을 소재로 글을 쓰는 작가가 거의 없다. 소설·드라마·영화가 많이 나와야 한다.


?오 교수=(과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다. 태생부터 과학자·엔지니어들이다. 그런데 교육환경을 보면 입시를 준비하면서 과학적인 호기심을 많이 잃어버린다. (상상력과 사고를 필요로 하는 과학이 아닌) 단답식이나 정답에 길들여진 과학을 한다.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며 과학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최 장관=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위해선 글로벌 경쟁을 하고 스스로 각성하고 탈바꿈해야 한다. 국내에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과학기술 70선을 뽑을 때 세계적으로 임팩트 있는 것을 기준으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패널=미래창조과학부 최양희 장관, KAIST 오준호 교수, 레인보우 이정호 대표, 사회=고종관 중앙일보미디어플러스 콘텐트본부장, 정리=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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