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美배우 그레고리 펙 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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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펙은 독특한 배우였다. 그의 스타성은 오랫동안 빛났고 천국에서도 여전히 빛날 것이다."(커크 더글러스)

"그레고리 펙의 작품들뿐 아니라 그의 고귀하고 도덕적인 태도 역시 길이 남을 것이다."(스티븐 스필버그)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대표 주자이자 지성파 미남 배우의 대명사인 그레고리 펙(사진). 그가 1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87세.

당당하고 위엄이 느껴지는 풍모로 전세계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별 중의 별이 안타까운 작별을 고한 것이다. 그의 마지막 길은 48년간 해로한 두번째 아내 베로니크가 배웅했다.

그는 1916년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 라 졸라에서 약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버클리대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연기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문학으로 전공을 바꾼다. 42년 '더 모닝 스타'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처음 선 그는 44년 '영광의 나날들'과 '천국의 열쇠'를 통해 은막에 데뷔한다.

이후 앨프리드 히치콕의 '망각의 여로', 엘리아 카잔의 '신사협정', 윌리엄 와일러의 '로마의 휴일', 존 휴스턴의 '백경'등에서 명감독들과 잇따라 인연을 맺으며 전성기를 맞는다. '천국의 열쇠'를 시작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다섯 차례 올랐으며 62년작 '앨라배마에서 생긴 일'로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쥔다.

하퍼 리의 퓰리처상 수상작 '앵무새 죽이기'를 원작으로 한 '앨라배마에서 생긴 일'은 펙에게 정의롭고 의식있는 연기자라는 명찰을 달아줬다. 그의 역할은 아이들에게 고함 한번 치지 않는 인자하고 민주적인 아버지이자 백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흑인을 구명하는 데 앞장서는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였다.

펙이 타계하기 며칠 전 미국 영화연구소(AFI)는 '1백년 영화사상 최고의 영웅'에 핀치를 선정하기도 했다.

펙은 2000년 자신의 배우 인생을 정리하는 고별 무대 '그레고리 펙과의 대화'에서 "내가 한 수많은 역할 중 애티커스 핀치가 나와 가장 닮은 인물이었다. 그때가 내 연기 인생의 절정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로마의 휴일'은 국내 영화팬들이 손꼽는 펙의 대표작이다. 거리로 뛰쳐나온 공주와 사랑에 빠지는 부드럽고 로맨틱한 신문기자 조 브래들리는 영화 같은 사랑을 꿈꾸는 모든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겉모습과 달리 스캔들 한번 없던 이 남자가 생전 가장 좋아한 여배우는 '로마의 휴일'의 파트너이자 꼭 10년 전 세상을 뜬 '세기의 연인'오드리 헵번이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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