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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노사정위 틀만 고집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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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정치권이든 노사든 기득권이나 제 식구 감싸기에만 매달리면 여론의 역풍을 각오해야 할 거다.”

이채필(사진)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 추진 과정과 노사정 논의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국회경제정책포럼이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노동양극화: 일자리 격차와 노동개혁’ 정책토론회에서다.

 토론자로 나선 이 전 장관은 현재의 노사정 구성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그는 “노동 개혁은 근로자와 기업 전체의 문제인데 일부를 대표하는 노동단체나 경영단체가 과점적 대표성을 무기로 담합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노사단체가 회의 참여와 결렬을 결정할 정도로 판(논의 프레임)을 좌우하고 정부나 공익위원은 끌려다니는 일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사정위는 다양한 여론을 수렴할 수 있도록 위원의 구성을 다양화하고 공익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독일의 하르츠 위원회처럼 이해관계자 담합이 아니라 전문가 중심의 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국회선진화법 체제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여야 동수로 구성되고 야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현재 여건상 다수결로는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며 “여든 야든 이념에 얽매여 제 식구 감싸기만 몰두한다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의 전략 부재도 꼬집었다. 그는 “정년 연장도 사전에 임금피크제와 패키지로 전략을 세워 추진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갈등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뒤늦게 이를 수습하려니 청년을 고용하면 세금을 깎아주고, 인건비까지 재정으로 지원하는 사태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노사정 협상과 관련해서도 “최저임금 인상이나 비정규직 퇴직금 지급, 실업급여 인상을 비롯한 사회안전망 강화책은 협상카드다. 그런데 협상카드를 중구난방으로 장외에서 발표해 협상을 그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장관은 “이런 태도는 정치적 치적을 과시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주고받는 협상의 방정식을 깨뜨려 실패하기 쉽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도 날 선 비판을 했다. 이 전 장관은 “정부가 시행령과 같은 방법으로 자체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것은 노사정위 틀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심도 있는 의견 수렴을 하고, 책임지는 자세로 처리하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이런 자세가 없으니 실적과 결과로 말을 해야 할 정부가 말은 많은데 성과는 부진하다”고도 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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