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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히 풀어진 새누리당 연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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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빈 기자 중앙일보 부장
이은
이은 기자 중앙일보 기자
25일부터 1박2일로 충남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새누리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김무성 대표와 의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필승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김경빈 기자]
이 은
디지털(정치)부문 기자

“제가 ‘총선!’하면 ‘필승!’을 외쳐 주십시오!”

 지난 25일 충남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 연찬회 만찬 자리. 여당 의원들의 만찬석상에서 으레 나올 법한 건배사가 등장했다.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의원 130여 명은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필승’이라 외치며 잔을 부딪쳤다. 건배를 제안한 사람이 뜻밖이었다. 다름 아닌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었다.

 행정자치부는 선거를 관리하는 부처다. 그의 네 글자짜리 건배사는 당장 ‘관권선거’ 논란을 불렀다. 정 장관의 건배사 소식을 전해 들은 새정치민주연합 유은혜 대변인은 26일 “행정자치부는 선거사범을 수사하는 경찰청을 지휘하고, 공직자의 선거 개입 행위를 신고하는 ‘공직비리 익명신고센터’도 운영한다”며 “행자부 장관이 새누리당 의원 연찬회에서 ‘총선 필승’을 외친 것은 본분을 망각한 망발”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덕담 수준의 건배를 한 것이고, 엄밀하게는 ‘새누리당’이라는 명칭도 사용하지 않았다”며 “건배 구호까지 정치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당 내에서도 “행자부 장관의 건배사로는 좀 신중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판이니 당 대변인의 해명이 먹힐 리 없다.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 장관의 해임을 요구하고, 정 장관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기로 했다. 선거사범을 단속해야 할 행자부 장관이 정치적 중립 위반 혐의로 고발당하게 된 상황이다.

 정 장관의 건배사 때문만은 아니다. 1박2일간의 새누리당 연찬회는 시종 아슬아슬했다. 지난해 8월 22일 연찬회에서 김 대표는 금주령을 내렸다. “과도한 음주문화는 수준 높은 토론문화와 공부할 시간을 없애고, 체력을 약하게 해 정신도 흐리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올해는 체력이 좋아졌는지 다시 술이 등장했다. 저녁 만찬과 이어진 시·도별 간담회에서 일부 의원들은 여느 때처럼 술잔을 기울였다. 와인과 소주, 맥주가 다시 등장한 반면 사라진 것도 있다.

 먼저 ‘보수혁신’이란 다짐이다. 1년 전엔 ‘보수는 혁신합니다’는 슬로건 아래 “혁신은 실천이 핵심. 작은 실천에 방점을 두고 정치 혁신을 일궈내겠다”고 다짐했으나 올해엔 쑥 들어갔다. 김 대표가 “혁신 노력이 국민 기대를 충족했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게 전부다. 심학봉 의원의 성폭행 논란 등에 대한 자성도 없었다. 연찬회 자체를 시간 때우기 행사로 생각했는지 이튿날 아침 김종석 여의도연구원장 특강엔 80여 명만 남아 있었다. 긴장감 없이 느슨하게 풀어진 연찬회에서 건배사 논란은 예견된 사고였는지 모른다.

글=이은 디지털(정치)부문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