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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위기를 기회로 만들 지혜 보여줄 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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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호 2 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22일 남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전격적으로 판문점에서 만났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엄포처럼 행여 불미스러운 충돌이 발생할까 우려했던 국민은 오후에 급작스레 이뤄진 대화를 환영했다. 대피했던 연천·포천·강화도의 접경지역 주민들도 큰 기대를 걸었다.


고위급 회담이 열리기 전까지 보름여 동안 한반도는 긴장 그 자체였다. 북측의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4일)과 우리 측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11일), 서부전선 포격전(20일), 북측의 무력행사 엄포(22일 오후 5시)까지 가슴을 졸여야 했다. 남북 고위급 회담은 다시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문제는 북한의 진정성이다. 세계적인 비난을 모면하려는 면피 전술이거나 위장 평화 공세일 수 있어서다. 북한 정권은 언제라도 태도가 돌변할 수 있는 집단이다. 정전 협정 이후 무력도발은 519차례, 협정 위반은 40만 건이 넘는다. 겉으론 대화하는 척하면서 갖은 수법으로 남남(南南)갈등을 유발하는 강온 작전으로 우리의 국론 분열을 획책했다. 지난해 10월 아시안게임 때도 그랬다.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용해 당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 등 북한 최고위급 인사들이 폐막식 때 인천을 방문해 회담한 적이 있다. 남북 간 훈풍을 기대했지만 그 후 북한은 대북전단을 담은 풍선을 고사총으로 쏘는 도발을 했다. 이런 전례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천안함을 침몰시키고, 연평도를 포격하고, 목함지뢰를 매설하고도 ‘오리발’을 내민 게 북한이다. 호전적인 김정은 정권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이를 안고 살 수밖에 없다.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발하는 북을 때로는 달래고, 때로는 얼러야 하는 게 숙명인지도 모른다.


숙명은 곧 운명이 되기도 한다. 이번 기회에 북한 도발의 악순환 고리를 확실히 끊고 평화통일의 의지를 다지는 게 그것이다. 무엇보다 국가적 위기 때 온 국민이 한마음 한 뜻으로 뭉쳐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어제 그런 저력을 보여줬다. 북한이 적반하장으로 우리에게 ‘48시간 최후통첩’을 해도 우리는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김정은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완전무장해 화력을 휴전선 일대에 집결했지만 우리 군은 강건했고, 국민은 군을 신뢰했다. 사재기에 나서거나 우왕좌왕한 국민이 한 명이라도 있었는가. 정쟁만 일삼던 여야 정치권도 오랜만에 북의 도발을 규탄하고 굳건한 안보 다지기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말대로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적 결집과 단호한 정신이 바로 김정은 정권에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임은 자명하다.


그렇지만 강하게 나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국민의 안위와 평화를 지키는 것이 정부와 군이 해야 할 가장 큰 책무다.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 70주년 경축사에서 천명했듯 북한의 무력도발은 단호하게 대응하고, 대화는 유연하게 해야 한다. 레드라인(금지선)을 절대 넘지 못하도록 하는 동시에 대화의 채널은 폭넓게 열어 두는 게 필요하다. 이산가족 상봉 재개를 비롯한 민간협력도 확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22일의 남북 고위급 접촉은 만시지탄이지만 시의적절했다. 북한이 진정성과 유연성을 보여주기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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