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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초예능’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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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논설위원

TV 예능에서 여자들이 사라졌다. ‘남초예능’ 시대다. 요리도, 토론도 남자가 하고 두뇌게임도, 육아도 남자가 한다. ‘핫’한 예능 프로일수록 남성 천하다.

 이런 경향은 꽤 됐다. ‘무한도전’류의 리얼 버라이어티물이 대세가 되면서다. 야생에 나가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콘셉트가 여성보다 남성 출연자에게 유리한 탓이다. ‘무한도전’의 여성판인 ‘무한걸스’, 걸그룹 농촌체험 프로인 ‘청춘불패’ 등이 맥을 이었지만 그뿐이었다. 인기 예능은 남성 주도고, 여성들은 보조적인 역할에 머문다. 물론 여성들이 활개 치는 예능은 따로 있다. 주로 종편에 많은 떼토크 프로다. 왁자지껄 수다판을 벌이는 ‘아줌마’ 이미지 프로들이다(‘진짜 사나이’ 여군 편 정도가 예외다).

 반면 남자 예능은 날로 성황 중이다. 아마도 새로운 남성상에 대한 사회적 요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는 아이들을 돌보고, ‘아빠를 부탁해’에서는 20대 딸과 교감한다. ‘삼시세끼’에서는 농사를 지으며 삼시세끼를 차리고,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는 마술 같은 요리를 선보인다. 1인 가구를 위한 실용파 쿠킹 클래스처럼 보이는 ‘집밥 백선생’에서는 남자들이 남자 선생에게 요리를 배운다. ‘비정상회담’에서는 외국 남성들이 토론을 벌이고, ‘문제적 남자’에서는 엘리트 남성 스타들이 아이큐 대결을 펼친다. 고난도 두뇌 플레이가 요구되는 ‘더 지니어스’ 같은 게임 예능도 남성 중심이다.

 육아·요리 같은 전통적인 여성 영역에 도전한 남성들은 친근한 이미지를 얻는다. 송일국은 삼둥이 아버지로 전성기 못잖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차줌마’ ‘백주부’ 열풍과 함께 요리 잘하는 남자들은 ‘셰프테이너’ 전성시대를 이끈다. 심리게임이나 토론 등 새롭게 진화하는 고급형 예능도 남성 일색인 게 눈길을 끈다. 모두 젊고 샤프한 남성 군단을 앞세웠다.

 요리하는 여성은 오랫동안 요리사나 요리연구가로 불렸는데 요리하는 남성들은 보다 세련되고 전문적 어감의 셰프로 불리며 등장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은 있는데 ‘뇌섹녀’는 왜 없는지 모르겠다. 남자는 요리만 잘해도, 머리만 좋아도 섹시할 수 있지만 여자는 섹시하게 생겨야 섹시하다는 얘기다.

 웃자고 만든 예능, 재밌으면 그만인 예능이라지만 좀 과한 ‘남초’다. 그나마 예능에서 각광받는 여성 캐릭터도 주책스러운 아줌마 아니면 못생겨서 조롱받는 여성들이고 말이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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