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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에서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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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런던특파원

묵직한 두께의 세계사 지도책을 펼친 건 그 때문이다. 10만 년 전 사하라 남부를 떠나 대장정에 오른 현생 인류의 이주(移住) 루트가 보고 싶어졌다. 유럽·아시아를 거쳐 호주에 도착한 건 5만 년 전이라고 했다. 아메리카로 가는 데 3만5000년이 더 흘러야 했다. 마침내 뉴질랜드에 도착한 건 1200년 전이었다. 아득한 시간들이다.

 그가 고국인 수단을 떠난 건 7개월 전이라고 했다. 차드를 거쳐 리비아로 갔고 그곳에서 5개월간 머물며 돈을 벌었다. 그러곤 ‘죽음의 바다’로 불리는 지중해를 건넜다. 그에게 “그사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고 했더니 “정말 많은 사람이 숨졌다. 때가 되면 이러든 저러든 죽는다. 이건 감수해볼 만한 위험”이라고 했다. 이제 그의 목표는 영국이다. 매일 밤 철길로 나선다. 도버행 화물열차에 뛰어오르기 위해서다.

 이달 초순 프랑스 칼레에 있는 난민촌 ‘정글’에서의 대화다. 서른 살이 좀 넘었을까,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는 그는 엔지니어였다. 손수 지은 집을 보여주고 싶어 했는데 목재로 기둥을 세운, 난민촌에선 제법 나은 거처의 소유자였다. 그래도 살림살이랄 게 있을 수 없었다. 옷가지와 이불·배낭 정도만 보였다.

 그 속을 뒤적거리더니 뭔가를 꺼내 들었다. 페도라였다. 챙이 제대로 말린 멋진 중절모였다. 애장품이라고 했다. 그가 그걸 쓰곤 움직이기 시작했다. 춤사위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동작이었다. 초현실적이었다. 지금도 믿는다. 그의 마음은 다른 곳을 떠돌았을 것이라고. 가족들과의 안온했을 수단에서의 과거였는지, 평화로운 영국에서의 미래일지는 모르겠다. 페도라는 그의 희망이자 갈망의 대변자였다.

 그와 같은 이가 칼레에만 수천 명이다. 유럽 전체로 보면 수십만 명이다. 독일은 올 난민 신청자를 75만 명으로 예상했다. 한 해 신생아 숫자다. 이제 질문은 유럽이 그처럼 몰려드는 난민들에게 얼마만큼의 공간과 자원을 지속적으로 내어줄 수 있느냐다. 여차하면 북한으로 인해 한반도의 우리도 맞닥뜨릴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사실 인류는 늘 이주해왔다. 더 나은 곳을 꿈꾸며 말이다. 그러곤 선점한 이들과 갈등했다. 이주자와 정주자(定住者)의 대립이다. 인류 안에 새겨진 상극의 DNA다. 초기 현생 인류가 겪었고 1990년대 보스니아 난민들에게도 벌어진 일이다. 인류애란 당위는 늘 현실과 충돌하곤 했다. 오늘의 우리는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에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그래서 아렸다.

고정애 런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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