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문화부 스크린쿼터 정면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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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영화 의무상영일수를 규정한 '스크린 쿼터제'의 유지 여부를 둘러싼 정부 부처 간 논란이 표면화하고 있다.

권태신 재정경제부 국제업무정책관은 12일 '21세기 금융비전 포럼'주최 세미나에서 "스크린 쿼터는 양보해야 한다"며 문화관광부와 영화계가 '절대 불가' 입장을 천명한 스크린 쿼터의 축소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지난 5일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한.미 상호투자협정(BIT) 체결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스크린 쿼터 축소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한 지 일주일 만이다. 미국 측은 한.미 BIT의 조건으로 현재 연간 1백46일인 한국의 스크린 쿼터 축소를 요구해 왔다.

權정책관은 "연간 대미 수출액이 3백30억달러에 이르는 데 비해 국내 영화시장에서 차지하는 미국 영화의 비중은 연간 2억달러에 불과하다"며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전 단계인 BIT가 최종 단계에서 스크린 쿼터 문제에 걸려 진전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일부 영화 관련 업자들의 집단이기주의를 보호하려고 BIT를 맺지 못해 수출산업에 피해를 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와 관련, "그동안 영화계가 국산 영화의 비중이 40%를 넘고 영화진흥기금이 5백억원 이상 모일 때까지 스크린쿼터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이미 국산 영화 비중이 45%를 넘었고, 영화진흥기금도 1천억원 이상 모았으므로 개방해도 문제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영화계는 즉각 반발했다. 영화감독 임권택씨와 영화배우 안성기.송강호씨 등 영화인 1백여명은 이날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 모여 한.미 상호투자협정 및 스크린 쿼터 축소를 반대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영화인들은 성명서에서 "국민의 합의사항으로 자리잡은 스크린 쿼터제가 일부 경제 관료의 여론 조작에 휘말리고 있다"며 "스크린 쿼터가 없다면 한국 영화계는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오는 13일 이정우 정책실장 주재로 영화계 인사 등 민간 전문가들과 비공개 회의를 열기로 했다.

박정호.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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