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하세요] 기타 줄 튕기던 손으로 도자기 빚으며 ‘우리의 낙원’ 꿈꾸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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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도자 작업장에서 기타를 잡은 도예가 정연택. ‘서울대 트리오’의 맏형이었던 그는 시민 공예운동에 힘쓰고 있다. 아마추어의 저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 저기 멀리서 우리의 낙원이 손짓하며 우리를 부르네….”

 오후의 햇살이 가건물로 쏟아져 내렸다. 등 돌린 장년 남자가 기타를 쳤다. 38년 전의 통기타 선율과 낮은 음색, 변함이 없었다. 1977년 제1회 대학가요제에서 동상을 받은 ‘젊은 연인들’이다. ‘서울대 트리오’의 맏형 정연택(60) 명지전문대 세라믹·텍스타일과 교수를 경기도 고양시 덕양로의 도자 작업장에서 만났다.

 “고교(보성고) 때부터 밴드를 했어요. 기타 못 치면 간첩이라던 시절이었으니까, 하하. 응용미술과 4학년 때 친구(사진가 민병헌) 동생인 민병호(공업교육과 3학년)가 찾아와 ‘죽은 큰형이 작곡한 노래를 세상에 알리고 싶다’며 대학가요제라는 게 생겼는데 나가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죠.”

 이 노래를 만든 방희준(작사)·민병무(작곡)는 경기고 시절부터 ‘훅스’라는 이름의 밴드로 활동했다. 대학 1학년 때인 1971년 성탄 전야 대연각 호텔에서 공연을 했다. 호텔 측이 내준 방에서 지인들과 하룻밤을 보낸 뒤 일행을 내보내고 뒤따른다던 두 사람은 화재로 사망했다.

1977년 대학가요제에서 ‘젊은 연인들’을 부르는 ‘서울대 트리오’. 왼쪽부터 민경식·정연택·민병호.

 대학가요제엔 응모자들이 몰렸다. 서울 예선은 두 번에 나눠 치렀다. 팀 이름도 없어 담당 PD가 “셋 다 서울대생이니 ‘서울대 트리오’라고 하자”라고 그 자리에서 이름을 붙여줬을 정도로 아마추어들이었다. 서울 예선 1등. 당시 MC였던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이 농대 후배인 민경식(조경학과 3학년)에게 귀띔해줘서 알았다. 본선 1등도 기대했지만, ‘나 어떡해’를 부른 ‘샌드 페블즈’에게 대상이 돌아갔다.

  이후 세 사람은 전공을 살려 제 갈 길로 갔다. 민병호·민경식은 건축가, 정연택은 도예가다. 때문에 이들의 노래는 한 곡뿐이지만 잊혀지지 않고 있다. 노래에 얽혔다는 사연이 간간이 화제가 됐다. 대학생들이 겨울 산행을 갔다가 조난을 당하자 살아 돌아오라며 가장 어린 후배를 내보냈는데, 구조대를 이끌고 산장에 왔더니 모두 동사해 있었더라는 얘기다. 정씨는 “곡을 쓴 당사자나 그 가족들로부터 들은 바 없다. 방송국에서 가요를 토대로 TV 단막극을 만든 적이 있는데, 그때 창안한 게 아닐까 추측된다”고 말했다.

 음악은 여전히 가장 가까운 취미다. 곡을 쓰고 밴드 활동도 한다. 작품도 음악과 가깝다. 서울 수유동 인수초등학교에 2008년 세운 도자 조형물 ‘꿈꾸는 피아노’는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게 만들었다.

 요즘 관심사는 시민 공예 운동. “공예 문화의 활성화를 말할 때 시민은 늘 소비자의 역할에 머물렀다. 공예는 의식주 같은 거다. 예로부터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직접 만들어 쓰던 것들이다. 문화 소비에 있어 아마추어들의 재발견이 필요한 때다.”

 2009년부터 아마추어 도예가들의 작품을 판매·기부하는 ‘버금이전’을 열고 있다. 배우 지진희, 가수 진미령, 음식연구가 박종숙, ‘서른 즈음에’를 작곡한 강승원 KBS 음악감독 등이 ‘버금이’ 교육을 받았다. ‘으뜸’의 다음가는 ‘버금’에서 따 온 이름이다. 올해는 10월 23∼25일 서울 평창동 화정박물관에서 연다.

 기타를 놓고 물레 앞에 앉은 그에게 물었다. “노래가 좋은가요, 도예가 좋은가요.” “둘 다 좋지만, 음악할 때가 더 좋아요. 가끔 하니까 속 편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마추어의 즐거움이다. 찬란한 젊은 날 딱 한 번 빛났던 무대에서 내려와, 이제는 남들과 함께 은은한 빛을 내는 정씨다.

글=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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