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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과자 분류되면 바로 해고? 재기 기회 반드시 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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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노총은 18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노사정위원회 복귀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일부 노조원의 반발로 회의가 파행됐다. 김동만 위원장(왼쪽)이 위원장실에서 노사정위 복귀에 반대하는 노조원들의 요구사항을 듣고 있다. 한국노총은 뒤이어 개최한 회의에서 노사정위 복귀 문제를 26일 논의하기로 했다. [조문규 기자]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복귀에 가장 큰 걸림돌은 두 가지다. 임금피크제 확산을 위한 취업규칙 개정과 저성과자 해고 가이드라인 제정 문제다.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이슈화됐다. 이 두 사안을 놓고 노동계가 반대하기 때문에 경영계에 유리한 것 아니냐는 오해가 나온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경영계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건 아니다. 오히려 경영계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문답 형태(Q&A)로 풀어본다.

 - 임금피크제가 필요한 이유는.

 “내년부터 대기업을 시작으로 정년이 60세로 의무화된다. 그런데 생산성이나 성과와 관계없이 매년 자동으로 임금이 오르는 연공서열형 체계를 그대로 두면 고령 근로자의 임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래서 생산성과 성과에 따라 임금이 탄력적으로 조정될 수 있는 역할급이나 직무급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임금체계는 한 번에 바꾸기 어렵다. 근로조건과 근로시간, 회사의 특성 등을 고려해 짜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 때문에 임금체계를 개편하기 전에 생산성이 떨어지는 일정 연령이 되면 임금을 일부 깎아 고용을 보장하는 임금피크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임금피크제는 임금체계를 바꾸기 위한 시간 벌기용인 셈이다.”

 - 임금피크제가 근로자에게 불리한 것 아닌가.

 “고령에 접어들면 임금이 깎이긴 하지만 대신 취업기간이 길어져 생애임금은 오히려 늘어난다. 일하는 즐거움도 그만큼 오래 누릴 수 있다. 심지어 회사가 어려워 경영상 해고를 할 때도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인 근로자는 구조조정 대상에서 제외된다. 임금피크제를 수용한 대신 정년이나 일정 연령 때까지 고용을 보장받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면 이는 고용 측면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계약이다. 이 경우 근로기준법 제15조에 따라 근로자에게 유리한 근로조건이 우선적으로 효력을 인정받는다. 따라서 사용자는 해당 근로자를 경영상 이유로 퇴사시킬 수 없게 된다. 사용자 입장에선 인건비를 줄이는 대신 고용의 유연성을 포기해야 하는 셈이다.”

 - 노동계가 반대하는 이유는 뭔가.

 “한국노총은 임금피크제를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노총 산하 LG·SK와 같은 대기업들은 상당수 임금피크제를 노사 합의로 도입해 시행 중이다. 정부가 제도화해 강제하려는 것에 반대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는 노조의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쉽게 변경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줘 임금피크제를 확산시키려는 계획이었다. 취업규칙은 규율이나 임금, 채용과 같은 회사 운영에 필요한 기본적인 인사·노무 기준이다. 그러나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선 취업규칙의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노사 간에 체결한 단체협약이 취업규칙의 상위개념으로 우선 적용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취업규칙을 쉽게 변경할 수 있도록 해도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선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껏해야 노조가 없는 중소 영세기업에만 적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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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성과자 해고 가이드라인은 사용자를 위한 것 아닌가.

 “꼭 그렇게 볼 수 없다. 오히려 해고 가이드라인은 경영계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일선 산업현장에선 대법원 판례에 따라 자율적으로 저성과자를 징계·해고하거나 다른 부서로 전환 배치했다. 불가피할 경우 법원 판결로 정리해 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지난해 3월 저성과자 관리지침인 ‘저성과자 관리와 법률적 쟁점’이란 책자를 발간해 전국 사업장에 배포했다. 그런데 이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그동안 기업 안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하던 저성과자 관리 문제가 전국적인 노사갈등의 쟁점으로 부각했다. ”

 - 왜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려 하나.

 “정부는 그동안 법원 판례 등으로 관례화된 저성과자 해고 문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자율적으로 해오던 것을 갑자기 정부 지침으로 강제하려 하자 노동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김대환 노사정위원장도 ‘꼭 제도화할 필요가 있는가’라며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 사용자가 저성과자로 낙인찍어 퇴출하는 식으로 남용할 우려는 없나.

 “그동안 대법원 판례를 보면 그런 경우 해고는 무효가 된다. 저성과자로 분류하자면 노사 간의 합의로 합리성과 공정성을 갖춘 정밀한 평가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저성과자로 선정됐다고 무조건 해고해서도 안 된다. 반드시 성과 향상을 위한 재교육이나 업무전환과 같은 재기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그랬는데도 도저히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퇴출할 수 있다. 이때도 사직의 방식이나 위로금 제도처럼 근로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

글=김기찬 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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