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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오페라 후원 '큰손' 빌라 부도수표 발행자로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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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2층 객석 앞면을 금빛 장식하던 한 후원자의 이름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의 이름은 얼마 전 워싱턴 오페라의 '젊은 예술가 육성 프로그램'의 타이틀에서도 지워진 바 있다. 오페라계의 '큰손'을 자처했던 쿠바 태생의 억만장자 알베르토 빌라(62.사진)의 얘기다.

아메린도 투자자문회사 회장인 그는 주식 투자로 벌어들인 돈을 오페라에 선뜻 내놓았고 엄청난 액수의 기부금을 약속했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런던 코벤트가든 오페라.키로프 극장.케네디센터.라 스칼라극장.카네기홀 등 유명 오페라단과 공연장 중에서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오페라계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지금까지 오페라에 쾌척한 액수는 모두 2억2천5백만달러(약 2천9백25억원).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와 빈 슈타츠오퍼.산타페 오페라 극장 객석에 개인용 액정 자막을 설치해 준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뉴욕 증권가에 불어닥친 주가 폭락으로 그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그 여파로 졸지에 '부도수표'를 남발한 사람이 돼 버렸다.

뉴욕필의 음악감독 로린 마젤과 함께 창설한 '마젤.빌라 지휘 콩쿠르'의 경비 70만달러(약 8억4천만원)를 제때 지급하지 않아 마젤이 호주머니를 털어야 했다. 메트로폴리탄오페라는 후원금 4백만달러의 미지급분을 회계 손실로 처리했다.

더욱 가슴아픈 사연은 LA오페라와 워싱턴오페라에 빌라가 기부하기로 약속한 금액 중 2백만달러(약 26억원)를 지금까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대신 지불해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LA오페라와 워싱턴오페라의 예술감독으로 있으면서 빌라와 절친한 교우관계를 맺어온 도밍고는"친구를 위해 비밀을 지키려고 했으나 들통나고 말았다"며 "빌라의 사업이 하루 빨리 회복돼 메세나 활동을 재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빌라는 어릴 때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음악가가 되고 싶어했으나 설탕 제조업을 하는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1959년 쿠바 혁명으로 모든 것을 잃고 미국으로 이주했고 어렵사리 억만장자가 된 빌라는 노총각으로 지내면서 오페라 관람을 유일한 낙으로 삼아왔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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