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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레저] 테마 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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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클럽축구의 '빅3'로 꼽히는 스페인(프리메라리가).이탈리아(세리에A).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 리그는 세계 축구선수들에게 꿈의 무대다. 올해로 48년째를 맞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는 바로 이들 리그의 챔피언이 총출동해 '왕중왕'을 뽑는 대회다. UEFA는 유럽 각국의 프로 팀들이 챔피언스리그에서 거둔 최근 5년간 성적을 토대로 본선 출전팀을 정한다.

지난달 29일(한국시간). 영국 맨체스터에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렸다. AC밀란과 유벤투스의 일합(一合). 대회 사상 처음으로 결승에서 이탈리아 팀끼리 맞붙었다. 전세계 2백개 국가에서 경기를 중계했고 5천4백여명의 기자가 몰려 들었다.

맨체스터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 하지만 축구의 본고장 중 본고장인 맨체스터는 1박2일 동안 5만 이탈리안의 습격을 당했다. 그들은 1년 전 붉은 옷을 입고 길거리로 뛰쳐 나온 우리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다.

*** 축제, 그 전야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영국 맨체스터 공항에 내렸다. 대합실에 들어서자 자줏빛 바탕에 8개의 별이 장식된 축구공, 챔피언스리그 로고가 눈에 띄었다. 28일 저녁엔 AC밀란과 유벤투스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린다. 이틀 뒤면 이곳은 '작은 이탈리아'로 변할 것이다. 흥분이 밀려왔다. 하지만 맨체스터 시내는 의외로 차분했다. 만큐니안(Mancunian.맨체스터 사람들)은 챔피언스리그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루를 위해 6일을 인내한다는, 엄밀히 말해 2시간을 위해 1백66시간을 기다린다는 축구광 영국인들. 이들이 자신의 안방에서 올 최고의 축구 이벤트가 열리는데도 무덤덤한 표정이다. 결승전 당일 TV뉴스 앵커의 멘트를 통해서야 만큐니안의 속내를 알 수 있었다.

*** 축제가 시작되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린 28일 아침. TV뉴스 진행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출근자 여러분, 아침부터 5만여 이탈리아 응원단이 공항에서 경기장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여 교통 혼잡이 예상됩니다."

이날 맨체스터 공항엔 공항 역사상 가장 많은 비행기가 착륙을 했다. 이탈리아 응원단이 비행기를 전세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만큐니안에겐 교통 혼잡만이 중요했다. 축구엔 애써 무심한 척하고 있다. 그래, 배가 아팠던 거다.

호텔 밖으로 나왔다. 맨체스터 시내는 이미 토리노(유벤투스의 홈)와 밀라노(AC밀란의 홈)가 돼 있었다. 길거리 곳곳에서 응원단과 마주쳤다. 한쪽에서 필리포 인차기(AC밀란)의 이름을 외치자, 다른 한쪽은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유벤투스)의 이름으로 맞받았다. 밀라노 사람들이 응원가'셈프레 콘 테'(Sempre con te.늘 그대와 함께)를 목청 높여 불렀고, 토리노인들은 특유의 휘파람 야유를 보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 구장 올드 트래포드(Old Trafford)는 '꿈의 경연장(Theater of Dreams)'이라 불린다. 1백16년의 경기장 역사에서 보듯 이곳은 영국 축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하지만 이날 올드 트래포드는 로마의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이 돼버렸다. 본부석 좌측엔 AC밀란 측 응원단이, 우측엔 유벤투스 측이 자리를 잡았다. 1백20분간의 혈투에서도 승부가 가려지지 않아 승부차기가 시작됐다. AC밀란이 골을 넣자 검붉은 색의 좌측 관중석이 들썩거렸고 유벤투스가 골을 넣으면 오른쪽의 흑백 줄무늬가 춤을 추었다. 결국 AC밀란의 우승. 한쪽이 내지른 환호는, 다른 한쪽이 흘린 눈물의 다른 이름이었다.

*** 축제, 그 이후

축제는 오후 11시쯤 끝났다. 하지만 심통이 난 만큐니안은 이탈리안의 축제가 올드 트래포드 밖으로 이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카페와 술집은 오후 10시30분 이후에 새로운 주문을 받지 않았다. 이탈리안은 결국 핫도그와 음료수로 샴페인을 대신했다. 그리고 다음날 일찍 맨체스터를 떠났다. 맨체스터는 다시 정적에 잠겼다.

맨체스터=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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