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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부끄러워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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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새누리당 문정림·이자스민·황인자·민현주 의원(왼쪽부터)이 지난 7일 국회 정론관에서 성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심학봉 의원에 대한 조속한 징계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

#성폭행 의혹에 연루된 ‘새누리당 초선 의원’이 ‘심학봉 의원’으로 드러난 뒤인 지난 4일 국회에서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가 열렸다. 한 여성 의원이 교육계에 만연한 성범죄 실태를 지적하기 위해 준비한 원고를 꺼냈다. 옆자리에서 원고를 슬쩍 넘겨다본 한 남성 의원이 핀잔을 줬다. “안 그래도 심 의원 문제로 시끄러운데 괜히 그런 걸 지적하면 ‘의원들이나 잘하라’고 눈총 받는다.”

 #새누리당의 쇄신모임 ‘아침소리’의 대변인인 하태경 의원이 심 의원의 징계를 촉구하는 성명에 동참해 달라는 통지문을 돌렸다. 회비를 내고 있는 의원 14명 중 10명이 동참했다. 한데 기자실에 배포된 성명서는 서명자란에 ‘하태경·강석훈·박인숙·이이재 의원 등 10명’으로 돼 있었다. 10명 중 6명이 익명으로 해 달라고 신신당부해서다. 동료 의원을 비판하는 성명을 실명으로 할 수 없다는 빗나간 ‘동지의식’ 때문이다.

 성추문에 휩싸인 심 의원은 지난 3일 탈당했다. 하지만 그 전이나 후나 새누리당은 ‘늑장, 눈치, 은폐’ 속에 갇혀 있다.

 “일단 경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공식 입장도, “개인의 일탈일 뿐”이라는 비공식 입장도 뿌리는 하나다. ‘굳이 내가 앞장서 나설 필요가 있느냐’다.

 아침소리 성명에 익명으로 참여한 한 의원은 “이런 일에 앞장서면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누가 내 편이 돼 주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새누리당 의원 157명 중 여성 의원은 20명이다. 하지만 여성 의원들조차 여성이 피해자인 이 사건에 ‘새누리 20’이란 명의로 성명을 낸 건 심 의원이 탈당한 지 나흘이 지난 7일에서였다. 이들은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즉각 나서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성명을 발표하기 전 열린 조찬 모임에는 19명(김현숙 의원은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으로 임명돼 제외) 중 모임 회장인 나경원 의원과 간사인 이자스민 의원 등 9명만 참석했다. 성명서의 명칭은 ‘새누리 20’이지만 ‘새누리 9’에 불과한, 반쪽짜리란 비판을 당 바깥 사람들에게 듣는 건 그 때문이다.

 늑장 대응이 아니냐는 지적에 한 여성 의원은 “수사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사실이 계속 나오고 있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하지만 성범죄 혐의가 사실이냐 아니냐를 무색하게 하는 건 국회의원이 평일 대낮에 상임위 회의에도 불참한 채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는 부끄러움이다. 국회의원은 헌법기관이다. 그만큼 소중한 자리다. 국회법 25조는 국회의원에게 ‘품위 유지의 의무가 있다’고도 규정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회의원이 장삼이사의 패거리 조직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임을 곱씹어야 한다.

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