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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태극기 달기가 상술만은 아닌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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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문병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정현 기자 중앙일보 사진기자
광복 70주년을 맞아 10일 서울광장 인근 빌딩에 대형 태극기가 많이 걸렸다. [강정현 기자]
문병주
경제부문 기자

10일 오후 1시쯤 서울 세종로길을 걷자니 현기증이 일었다. 길 양쪽 대부분의 건물에 걸린 큼지막한 태극기들 때문이었다. 한눈에 그렇게 큰 태극기가 많이 들어오긴 처음이었다.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정부에서 추진한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에 각계가 동참하면서 만들어낸 풍광이다.

 기업들이 적극적이다. 서울 강남의 삼성생명 빌딩에는 커다란 태극기와 함께 ‘광복70주년! 하나 된 우리는 영원한 대한민국입니다’라는 문구가 빌딩을 덮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서울 계동 사옥에 태극기와 함께 ‘위대한 여정 새로운 도전’이란 문구를 적어 걸었고, LG그룹은 여의도 LG트윈타워와 광화문빌딩에 태극기를 달았다. 특히 롯데는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 70층에 가로 36m, 세로 24m의 초대형 태극기를 설치하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를 두고 ‘이미지 개선용 태극기 마케팅’ 혹은 ‘정부 눈치보기식 요식행위’라는 지적이 있다. 가족 간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롯데나 그룹 총수가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오르내리는 기업들이 더욱 비판받는 실정이다. 전국 매장에 태극기를 달고 방문 고객에게도 나눠주겠다는 대형마트를 두고는 “국기를 자기 잇속 챙기는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비아냥까지 하고 있다. 기업들은 억울해 한다. 롯데는 경영권 분쟁이 촉발하기 두 달 전부터 관공서와 초대형 태극기 설치를 추진했다고 한다. 다른 업체들도 “오히려 과도한 마케팅이라는 비판 때문에 더 못하는 상황”이라고 푸념까지 한다.

 넘쳐나는 국기도 그렇지만 기업들이 받는 비판조차 신선하다. 국경일만 되면 “왜 국기가 많이 안 보이느냐”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대단지 아파트에 국기가 펄럭이는 집은 한두 가구인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기 일쑤였다.

 근본적으로 이번 태극기 마케팅이 순수하지 못하다는 말을 듣는 건 지금까지 국기 사용에 너무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의 경우 관공서는 물론 패션 아웃렛만 가더라도 큰 국기가 펄럭이는 걸 목격할 수 있다. 영국 국기 유니언잭을 엠블럼으로 사용한 ‘리복’이나 미국 성조기를 활용한 ‘폴로’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국수적이라는 비판보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상징하는 수단이 됐고, 해외에서도 소비하고 싶은 브랜드가 됐다.

 우리나라도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태극기를 활용한 의상이나 디자인 개발이 활발해진 바 있다. 하지만 반짝 흥행하고 다시 잠잠해지는 경향으로 변했다. 광복 70주년은 의미가 큰 국경일이다. 이왕 태극기 달기 운동을 시작했다면 이번 기회에 태극기를 더욱 자신감 있게 사용하고, 일상에 친숙하게 만들었으면 한다.

글=문병주 경제부문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