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만 대신 작성해준 중개업자, 책임 범위는?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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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기자] # 급한 돈이 필요했던 세입자 A씨는 임대차보증금을 담보로 제공하고 대부업자 B씨에게 돈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A씨가 담보로 제공한 임대차보증금은 7000만원이고, 대부업자에게 빌리려는 돈은 3600만원입니다.

세입자 A씨는 평소 친분이 있던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아가 친구인 C씨를 집주인이라 소개하고 계약서 대필을 부탁했습니다. 임대인은 C, 임차인은 A와 B를 공동명의로 하는 보증금 7000만원의 임대차계약서를 새로 써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중개업자는 대필 계약서를 몇 차례 써본데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A씨의 부탁이라 의심 없이 계약서를 작성해줬습니다. 대부업자 B씨 역시 부동산중개업자가 써주는 계약서였기 때문에 의심 없이 약속한 금액인 3600만원을 A씨에게 빌려줬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대부업자 B씨는 C씨가 실제 소유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또 세입자 A씨와 실제 소유자 사이에 보증금 7000만원의 전세계약도 체결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사실 이 사건의 부동산은 A씨가 실제 소유자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계약을 체결한 집이었습니다.

대부업자는 세입자 A씨에게 중개업자에게 원금 3600만원과 그에 따른 이자, 손해배상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습니다. 이 때 단순히 계약서만 대신 작성해준 중개업자에게도 손해배상 책임이 있을까요?

이와 관련해 공인중개사법 제25조 제3항, 제4항 및 제26조를 살펴보면 중개업자는 중개대상물에 관하여 중개가 완성된 때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거래계약서 및 중개대상물 확인ㆍ설명서(이하 ‘거래계약서 등’이라고 한다)를 작성해 거래당사자에게 교부하고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간 동안 그 사본을 보존하여야 한다.

중개업자가 거래계약서 등에 서명 및 날인을 하여야 하고, 거래계약서를 작성하는 때에는 거래금액 등 거래내용을 거짓으로 기재하거나 서로 다른 둘 이상의 거래계약서를 작성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위 법은 중개업자로 하여금 중개가 완성된 때에 거래계약서 등을 작성ㆍ교부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개업자는 중개가 완성된 때에만 거래계약서 등을 작성ㆍ교부해야 하고 직접 중개를 하지 않았을 경우 함부로 거래계약서 등을 작성ㆍ교부해서는 안됩니다(대법원 2010. 5. 13. 선고 2009다78863, 78870 판결 참조).

직접 중개하지 않은 경우 계약서 작성ㆍ교부 피해야

일반적으로 거래당사자끼리 직접 부동산거래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중개업자를 통해 작성하려는 것은 거래계약서상의 권리ㆍ의무관계가 진실한 것임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의 중개업자는 임대차계약서를 새로 작성하면서 C씨가 진정한 소유자인지, 기존 임대차계약이 진정하게 성립된 것인지, 실제 보증금 7000만원이 지급 됐는지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약서를 작성했습니다.

세입자 A씨와 집주인을 사칭한 B씨의 말만 믿고 마치 등기부등본을 확인하고 종전 계약의 진정성을 확인한 것처럼 임대차계약서와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를 작성ㆍ교부했습니다.

따라서 법원은 권리관계 확인을 소홀히 한 중개업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이 소송을 제기한 대부업자의 과실도 일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부업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데다 대부금 회수를 위해서는 담보물의 하자 여부에 대한 세밀한 확인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데도 이를 게을리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손해 발생한 경우 배상 책임 있어

하지만 중개업자가 이 계약서를 작성해주면서 세입자 등에게 대가를 받은 정황이 없기 때문에 이를 참작해 대부업자가 요구한 손해배상액 중 15%만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10가단38693 판결).

전세재계약을 하거나 전대차계약을 하는 경우 중개업자에게 대필 계약서 작성을 부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필료 5만~10만원만 내면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개업자가 계약서를 대신 작성해주더라도 거래당사자는 실제 소유자가 맞는지, 등기부등본 상 하자가 없는지 여부를 적극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중개업자는 직접 중개한 물건이 아니라면 대필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만일 대필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 경우라면 직접 중개한 물건의 계약서를 작성하듯이 권리관계 등을 꼼꼼하게 따져 작성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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