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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형사 도철, 거침없이 내달리는 경주마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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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베테랑’ 황정민·유아인] 황정민 형사 도철, 거침없이 내달리는 경주마처럼

엄청나게 통쾌하고 완전히 제멋대로인

경찰청 광역수사대의 에이스 형사 서도철(황정민). 쥐꼬리만한 봉급에 밥 먹듯 야근하는 고달픈 나날이지만, 경찰로서의 ‘가오(자긍심)’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는 신조로, 신출귀몰하며 범인을 때려잡는다. 어느 날 그의 앞에 망나니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가 나타난다. 돈이면 안 될 게 없다는, 그릇된 신념으로 온갖 악행을 저지르던 그는 한 노동자의 존엄성을 짓밟는, 인간 이하의 범죄를 저지른다. 이를 알게 된 도철은 그를 반드시 체포하겠다는 일념으로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며 온갖 장애물을 정면 돌파해 나간다. 과연 그는 태오를 법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을까. ‘베테랑’(8월 5일 개봉, 류승완 감독)은 시종 유쾌한 가운데 도철과 태오, 두 사람의 팽팽한 기싸움 때문에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영화다. 태오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말겠다는 도철과 함께 분노하고 가슴 졸일 수 있는 건 황정민과 유아인, 두 주연 배우의 열연 덕분이다. 끝내 잡으려는 자와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자의 처절한 싸움을 그려내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부은 두 배우를 만났다.

‘베테랑’의 형사 도철은 정의 실현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다. “수갑 갖고 다니면서 쪽팔리는 짓은 하지 말자”던 그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재벌 3세 태오 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기 위해 저돌적으로 달려든다. 어떤 장애물도 거침없이 뛰어넘는 경주마처럼. 도철을 연기한 황정민(45)은 눈에 띄게 날씬해진 몸매로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다. 촬영 중인 ‘검사외전’(이일형 감독)에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검사를 연기하느라 살을 5㎏이나 뺐다고 했다. 전날 밤 늦게까지 촬영하다 온 탓에 많이 피곤해 보였지만, 자신감과 여유가 넘치는 말투에서 ‘베테랑’에 대한 만족감이 묻어났다.

-류승완 감독에게 재미있는 영화 한 번 해 보자고 제안한 게 출발점이었다고 들었다. “류 감독이 ‘베를린’(2013) 막바지 촬영을 하던 3년 전 무더운 여름날, 너무 힘들어 하기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우당탕탕 재미있게 찍을 수 있는 영화를 하자고 말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 류 감독은 우리에게 도철 같은 형사 한 명쯤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대본을 썼다고 했다.”

-이야기는 단순한데, 밀어붙이는 힘이 강하다. “이야기는 ‘겁나게’ 단순하다. 대본이 너무 쉽게 읽혀 오히려 독이 되면 어쩌나 걱정했다. 단순한 이야기에 어떤 식으로 긴장감을 부여할지 많이 고민했다. 인물이 디테일하게 살아 숨 쉬면, 충분히 긴장감을 불어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만 베테랑이 아니라, 팀 전체가 베테랑이다. 각자 어딘가 나사가 풀려 있는데, 뭉쳐 놓으면 진짜 강하다.”

-기본 설정만 보면 ‘공공의 적’ 시리즈(2002~2008, 강우석 감독)가 떠오른다. “처음 대본을 읽을 때 그 영화와 비슷하게 보이면 어쩌나 걱정했다. 하지만 찍고 보니 전혀 달랐다. 형사와 재벌 간 싸움은 비슷하지만, 인물 구성과 이야기 자체가 다르다.”

-도철은 저돌적이란 점에서 ‘공공의 적’ 시리즈의 주인공 강철중(설경구)과 비슷하다. “한마디로 경주마 같다. 욕 잘하는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도철은 철중보단 착하다. 싸움도 더 잘한다(웃음). 도철은 유들유들하고 어딘가 허술하지만, 신념 있고 정의롭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다.”

-광역수사대 형사 역할은 ‘부당거래’(2010, 류승완 감독)에 이어 두 번째다. “‘부당거래’의 형사 철기(황정민)는 구린 일을 하는,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다. 도철과 완전히 상반된다. 철기는 대사가 별로 없어 힘들었는데, 도철은 할 말 다하고 감정도 분출하니까 연기적으론 더 쉬웠다.”

-한 가지 목적을 향해 흔들림 없이 달려간다는 점에서 단선적인 캐릭터로 비칠 수 있는데. “단선적이지만, 거기서 오는 통쾌함이 분명히 있다. 단선적인 캐릭터에 어떤 색깔과 연기 디테일을 입혀 단선적이지 않게 만들까 많이 고민했다.”

-참고한 작품이나 캐릭터가 있나. “‘리썰 웨폰’ 시리즈(1987~98, 리처드 도너 감독)를 다시 봤다. 캐릭터를 위해서가 아니라, ‘베테랑’의 느낌이 그 영화처럼 통통 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잘돼서 ‘리썰 웨폰’처럼 형사물 시리즈로 만들면 좋겠다고 류 감독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부당거래’ 때 알게 된 광역수사대 형사들과 친하니까, 따로 취재할 필요는 없었다.”

-액션의 컨셉트는 어땠나. “일반적인 액션과는 느낌이 달랐다. 말 그대로 개싸움이다. 후반부 태오와의 격투신에서 도철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데, 주먹으로 치다가 나중엔 태오의 뺨을 때린다. ‘망나니 녀석, 정신 좀 차려’란 느낌이랄까. 그게 엄청 통쾌했다. 관객도 그렇게 느낄 것 같다. 전반적으로 재미있고 통쾌한 액션이었다.”

-명동 추격신을 찍기 위해 경찰서장까지 설득했다고 들었다. “도철이 도망가는 태오를 잡기 위해 오토바이로 추격하는 신인데, 명동 8차선을 통제하고 찍는 게 쉬운 일인가. 감독과 함께 남대문 경찰서 서장을 찾아가 부탁했다. 허락받기 위해 사진 100장쯤 찍어준 것 같다(웃음).”

-유아인의 연기가 얄밉다고 느낀 순간은 없었나. “체포해야 할 범인이라 생각하면서부터 인간 이하의 망나니라고 봤다. 얄밉고 말고 할 게 없었다. 현장에서 (유)아인이와 일부러 말을 섞지 않았다. 수갑을 채워야 할 놈인데 무슨 이야기를 하겠나. 연기를 위한 거리 두기다. 작품 끝나고 나서 친해졌다. 최 상무 역을 맡은 유해진이 더 미웠다. 나쁜 놈 밑에 빌붙어 먹고 사는 놈이 더 나쁘다. 아! 유해진과의 신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어떤 건가. “최 상무가 있는 구치소 면회실로 증인을 불러들이는 장면에서 ‘들어와’라는 대사를 했는데, 그 순간 스태프들이 자지러졌다(황정민의 전작 ‘신세계’(2013, 박훈정 감독)의 명대사 ‘드루와(들어와)!’를 연상시키기 때문). 그래서 대사는 안 하고 손짓만 했다(웃음).”

-‘국제시장’(2014, 윤제균 감독)에 이어 오달수와 또 호흡을 맞췄다. “그때와는 다른, 재미있는 케미가 있다. (오)달수 형과 연기하는 게 정말 좋다. 오 팀장 역으로 그를 적극 추천했다. 대사처럼 ‘방귀 냄새까지 같진 않아도’ 호흡이 척척 맞는다.”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그냥 속이 다 시원하네’라고 느꼈으면 좋겠다. 요즘 현실에서는 그런 기분을 자주 못 느끼지 않나. 그리고 위에 있는 몇몇 사람이 이 나라를 움직이는 게 아니란 걸 말하고 싶었다.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건, 열심히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이륙하는 비행기에 매달리는 톰 크루즈의 액션을 뚫고 흥행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매달리는 게 중요하다면, 우리도 크레인 같은 데 매달릴 걸 그랬다’며 류 감독과 농담을 주고 받은 적이 있다. 도철은 자동차 밀매상을 검거하는 초반부에서 컨테이너 박스 사이에 끼인 채 격투를 벌인다. 톰 크루즈가 매달리면, 난 낀다고 강조하고 싶다(웃음).”

“‘1000만 배우’? 별로 관심 없다. 난 그냥 배우로 불리고 싶은데 사람들이 이런 거 저런 거 갖다 붙이더라. 그러거나 말거나(웃음). 그래도 요즘 어르신들이 날 많이 알아봐 주셔서 기분 좋다. ‘검사외전’ 찍느라 부산에 머물 때 아침에 사우나에 갔다. 어르신들만 계셨는데, 다들 팬이라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국제시장’ 덕분이다. 어르신들 등을 밀어드리며 ‘또 어떤 영화 보셨어요’라고 여쭤봤더니, ‘‘국제시장’밖에 몰라. 하지만 그래도 팬이야’라며 웃으시더라. 기분 좋았다.” -황정민

글=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사진=전소윤(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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