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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새누리 영남 의원 성추문 … 지역독식이 부른 오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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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이 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회의에 참석한 황진하 사무총장은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심학봉 의원에 대해 “당 차원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심 의원은 이날 새누리당을 탈당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을동·서청원·이인제 최고위원. [김경빈 기자]

40대 여성 보험설계사를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새누리당 심학봉(54·초선·경북 구미갑·사진) 의원이 3일 탈당했다. 심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모든 것이 저의 부주의와 불찰로 일어난 일이기에 더 이상 당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새누리당을 떠나고자 한다. 모든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새누리당 의석은 160석에서 159석으로 줄었다.

 심 의원 사태를 계기로 핵심 지지 기반인 영남권 의원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영남에서도 대구·경북(TK)은 새누리당의 초강세 지역이다. 수십 년간 ‘새누리당 깃발만 꽂으면 된다’고 할 만큼 이 지역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다. 대통령 후보와 당 대표 및 원내대표 등 주요 직도 이 지역 출신이 도맡다시피 했다. 하지만 당 ‘주류’로서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그만한 책임을 다하진 못했다는 비판이 많다. “야당의 견제를 받지 않는 ‘일방적인 권력’이다 보니 어느 순간 ‘고인 물’이 돼버린 것”이란 지적이 당 안팎에서 나온다.

 익명을 원한 대구의 한 공무원은 “시민들의 무서움을 알지 못한 채 권력자에 붙어서 공천만 받으면 그걸로 끝이라는 인식이 TK 의원들의 오만함을 키우게 했다”며 “그러다 보니 여성·장애인 등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사건이 발생한 지난달 13일 소속 상임위원회인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주파수 정책소위에도 불참한 채 대구의 호텔에 있었다. 폐쇄회로TV(CCTV)엔 보험설계사 여성이 오전 11시40분쯤 호텔을 나갔고, 심 의원이 정오쯤 체크아웃 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심 의원이 성폭행을 했다는 시각은 평일(월요일) 오전이고 국회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던 날”이라며 “의원으로서의 본분은 내팽개치고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그런 심 의원을 새누리당은 사건이 있던 지난 13일 경북도당 ‘윤리위원장’에 임명했다. 영남 의원들이 구설에 연루된 건 심 의원이 처음이 아니다. 김형태(경북 포항 남-울릉) 전 의원의 경우 사망한 동생의 아내를 2002년 성폭행하려 했다는 내용의 녹취록이 2012년 총선 투표일 직전에 공개되면서 ‘제수 성폭행 시도’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결백을 주장하고 있지만 당선 이후 부정적인 여론과 당내 압박을 못 이겨 자진 탈당했다.

 경남 남해 출신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지난해 강원도 원주의 한 골프장에서 캐디를 성추행한 혐의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부산 북-강서갑의 정형근 전 의원은 2005년 서울의 한 호텔 객실에서 40대 여성과 함께 있는 장면이 목격됐는데, “호텔로 묵주를 전달해주러 간 것”이라고 해명해 논란이 더 커졌다.

 야당은 심 의원에게 파상공세를 폈다. 이미경·김상희 의원 등 여성 의원 25명은 공동성명을 내고 의원직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심 의원이 2013년 ‘성폭력에 희생되는 아이들은 하루 평균 3명, 그런데 징역형은 5년6개월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한 시민모임의 서명운동에 동참했습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고 꼬집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아버지 대통령 각하”=심 의원은 2012년 19대 총선 당시 현역 3선 김성조 의원을 제치고 공천을 따냈다. 이공계 출신에게 가산점을 준 덕에 공천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설립한 국립 고교인 구미전자공고와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KBS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기술고시에 합격해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 선임행정관도 지냈으나 친박계로 분류된다. 2013년 10월 26일 구미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4주기 추도식 당시 “아버지 대통령 각하”라고 표현해 논란을 일으켰다. 휴대전화 연결음도 박 전 대통령이 만든 ‘새마을 노래’로 돼 있다.

 그는 이미 한 차례 의원직을 잃을 뻔했다. 당선된 뒤 ‘심봉사’란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회원을 모집했다가 사전 선거운동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하면서 지난해 4월 대구고법이 무죄 판결을 내려 가까스로 의원 신분을 유지했다.

  이가영·김경희 기자 ide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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