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동생 신춘호의 라면사업 반대 … 칠순 잔치도 안 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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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셋째 남동생인 신선호(82) 일본 식품회사 산사스 사장이 31일 입국했다. 그는 신동주(61)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돕기 위해 신 총괄회장의 전격적인 일본행을 추진한 ‘브레인’으로 알려졌다. 부친(고 신진수)의 5남5녀 자녀 중 유일하게 신 총괄회장과 관계가 좋은 남동생이기도 하다. <중앙일보 7월 31일자 1, 4면>

 신 사장은 이날 오후 7시쯤 부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장손인 신 전 부회장의 서울 성북동 자택에 들어서기 전 기자들과 만나 이번 사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신 총괄회장이 차남인 신동빈(60) 롯데그룹 회장이 한·일 롯데 경영권을 모두 가져간 사실을 뒤늦게 알고 격분했고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한·일 롯데의 최종 경영자라는 것이 신 총괄회장의 일관된 생각이며 ▶신동빈 회장이 아버지를 해임한 것은 비도덕적이라고 주장했다.

 형제간의 다툼은 롯데그룹에선 드문 일이 아니었다. 신동주·동빈 형제의 아버지인 신 총괄회장 본인 역시 동생들과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다. 1958년 신 총괄회장은 자본금 150만원으로 롯데를 설립하면서 남동생들과 경영권을 고루 나눠 가졌다. 동생들에게 요직도 두루 맡겼다. 하지만 신 사장을 제외하고는 형과의 갈등 때문에 결국 모두 회사를 떠났다. 큰 동생인 고 신철호 전 롯데 사장은 66년 형인 신 총괄회장과 동생인 신춘호(85) 농심 회장의 도장을 위조해 회사 전 재산을 횡령해 새로운 회사를 세우려다가 구속됐다. 둘째 동생인 신춘호 농심 회장과는 재계에서 함께 활동하면서도 신 총괄회장이 동생의 고희연에도 가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나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초에 농심이라는 기업이 형제가 갈라서면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신 총괄회장이 “한국에는 안 맞다”며 격렬하게 반대하던 라면사업을 신 회장이 65년 밀어붙이면서다. 처음엔 롯데공업이란 회사를 설립해 ‘롯데라면’을 팔았지만 결국 78년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고 완전히 갈라선다.

 넷째 남동생 신준호(74) 푸르밀 회장은 30여 년 동안 롯데에 몸담았다. 롯데제과·롯데리아·롯데햄우유 사장 등을 겸직할 정도로 활약했지만 신 총괄회장과 재산 분쟁을 벌이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김영삼 정부 시절 부동산실명제가 실시되자 신준호 회장 명의로 된 서울 양평동 땅(현 롯데제과·푸드·홈쇼핑 부지)을 놓고 차명을 주장하는 신 총괄회장과 진짜 주인이 누군지 소송전을 벌였다가 진 것이다. 막내 여동생인 신정희(69) 동화면세점 사장과도 법적 분쟁이 있었다. 신 사장의 남편 김기병(77) 회장이 운영하는 관광회사가 롯데관광이라는 이름과 관련 로고(샤롯데)를 사용했는데 2007년 롯데그룹이 일본 관광 대기업 JTB와 합작해 롯데JTB를 설립하면서 로고를 사용 못하게 됐다.

 한편 이날 신동빈 회장은 일본에 머물며 제사에 오지 않았다. 신 총괄회장과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88) 여사, 신영자(73) 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신동주 전 부회장 등도 참석하지 않았다. 신 총괄회장은 일련의 사태로 건강이 다소 나빠져 현재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 집무실 겸 거처에서 부인 등 가족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희령·이현택 기자 hea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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