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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랬었지 … 그림이 말하는 우리 살아온 7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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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옛 기무사 터에 자리 잡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시민과 함께하는 광복 70년 위대한 흐름- 소란스러운, 뜨거운, 넘치는’ 전시가 27일 개막했다. 맨 앞 가운데에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교준 중앙일보 편집인. 전시는 10월 11일까지 이어진다. [강정현 기자]
박이소의 램프 설치 ‘당신의 밝은 미래’(2002).

6·25가 발발하자 당시 18세의 백남준(1932∼2006)은 가방에는 불어사전을, 입에는 어머니가 까 주는 과일을 넣고 서울을 떠나 피난길에 오른다. 부산을 거쳐 일본에 건너가 도쿄대에서 미학을 공부하고 독일로, 미국으로 떠돌다가 1984년에야 귀국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1913∼74)도 부산 피난 시절 ‘피난열차’ ‘판자집’ 등 망연했던 현실을 그렸다. 강원도 이북 고향을 등지고 서울의 미군부대 PX에서 초상화를 그려 연명하던 박수근(1914∼65)은 극적으로 가족과 재회한다.

폐허에서 일군 이들의 미술은 60, 70년대의 앵포르멜과 단색화, 80년대 민중미술, 그리고 전준호·홍경택·권오상 등 오늘의 젊은 작가들에게로 이어졌다.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다양하게 열린 미래-. 서울 삼청로 옛 국군기무사 터에 자리잡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시민과 함께하는 광복 70년 위대한 흐름- 소란스러운, 뜨거운, 넘치는’ 전이 펼쳐 놓은 파노라마다. 전시제목에 대해 강승완 학예연구1실장은 “다양하고 불안정한 동시대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세 개의 형용사만 불안하게 열거함으로써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우리의 현재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근현대미술가 110여 명의 270여 점이 서울관 1·2전시실에 쏟아져 나왔다.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첫선을 보인 뒤 개인 소장가에게 들어갔던 백남준의 비디오 설치 ‘이태백’(1988)은 국내 처음으로 전시된다. 김환기의 ‘판자집’(1951), 박수근의 ‘할아버지와 손자’(1960)도 출품됐다. 전시공간은 전방위 예술가 최정화가 디자인했다. 여느 전시장의 흰 벽과 달리 철조망, 산업현장의 판지, 은박지와 비닐 등을 활용해 변화무쌍했던 시대 분위기를 연출했다.

“꽃잎이 피고 또 질 때면 그날이 또 다시 생각나 못 견디겠네… 그대 왜 날 잡지 않고 그대로 왜 가버렸나.”(신중현, 꽃잎, 1967) 전시장엔 철 지난 유행가가 울려퍼진다. 시인·음악가 성기완의 사운드 믹스 ‘노래따라 삼천리’다. 광복 후의 흥겨움을 담은 ‘낭랑 18세’(1949)부터 X세대의 등장을 알린 ‘환상 속의 그대’(1992)까지 시대별 대표곡을 이어 붙였다.

 전시 마지막 작품은 탈북화가 선무의 ‘우리는 평화를 원해요’, 한목소리로 합창하는 소년 소녀를 북한 선전화처럼 그렸다. 박이소(1957∼2004)는 휘황한 조명등 여러 개를 빈 벽에 쏘는 설치를 만들어 ‘당신의 밝은 미래’라 이름 지었다. 그 벽에 우리는 무엇을 써나갈 것인가. 전시는 그걸 묻는 듯하다.

글=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중앙일보 창간 50주년, 광복 70주년 특별전 ‘소란스러운, 뜨거운, 넘치는’=10월 11일까지 서울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제1·2전시실. 오전 10시∼오후 6시. 수·토요일 오후 9시까지, 월요일 휴관. 입장료 4000원. 24세 이하 또는 65세 이상, 대학생 무료. 광복절 전관(과천관·서울관·덕수궁관) 무료. 02-3701-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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