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희망 안고 시베리아 9288㎞ 달린 12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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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친선 특급 대원들이 26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인근의 야로슬라블역에 도착해 ‘모스크바 입성을 환영합니다’란 현수막을 들고 환영 행사를 하고 있다. 유라시아 친선 특급은 시베리아횡단철도 9288㎞를 12일간 달렸다. 환영식에는 러시아 철도공사, 모스크바시 관계자 등도 참석했다. [사진 외교부]

중세 유럽의 성을 닮은 러시아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블역 선로 끝에는 ‘0㎞’라고 적힌 작은 조형물이 있다.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시베리아횡단열차(TSR)가 여기서 시작된다는 의미다. TSR이 끝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역에는 ‘9288㎞’가 적힌 조형물이 있다. 지구 둘레(4만192㎞)의 4분의 1을 철길로 잇는 TSR의 상징이다.

 26일 오전 11시43분(현지시간) 야로슬라블역 ‘0㎞’ 표지판 뒤로 ‘유라시아 친선특급’ 열차가 나타났다. 11박12일 동안 북선(블라디보스토크~하바롭스크~이르쿠츠크~노보시비르스크~예카테린부르크~모스크바) 9288㎞를 달린 열차다.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출발해 이르쿠츠크에서 북선과 만난 남선(2469㎞)을 더하면 이번 유라시아 친선특급이 달린 거리는 1만1757㎞다.

 외교부와 코레일이 공동 주최하는 ‘유라시아 친선특급’은 19박20일 동안 1만4400㎞를 달리면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유럽·아시아 대륙을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묶어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는 구상)와 통일을 홍보하는 이벤트다. 유라시아 친선특급에는 이준 열사의 외증손자인 조근송(60)씨 등 독립운동가의 후손들도 몸을 싣고 있다.

 야로슬라블역에 나와 있던 조태용 외교부 제1차관은 “친선특급은 분단 70년의 장벽을 걷어 내고 유라시아 대륙 전체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꿈과 희망을 싣고 달리는 평화통일의 열차”라고 말했다. 이날 도착행사에는 조 차관을 비롯해 블라디미르 야쿠닌 러시아 철도공사 사장, 최연혜 코레일 대표 등이 참석했다. 야쿠닌 사장은 “철도는 고립시키는 게 아니라 이어 주는 것”이라며 “유라시아 친선특급이 분단된 세상을 이어 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친선특급 참가자 200여 명은 그간 이르쿠츠크에선 러시아인·고려인들과 함께 모여 ‘유라시아 대축제’를 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선 헤이그 특사로 파견됐다 이국 땅에서 순국한 이상설 열사의 유허비(遺墟碑)를 찾기도 했다.

하바롭스크~이르쿠츠크(3340㎞)를 달릴 때는 3박4일(62시간)을 3㎡의 좁은 열차 객실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최요한(24)씨는 “62시간 동안 씻지 못해 힘들기도 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열차 안에 있는 시간이 밖에 있는 시간보다 즐거웠다”고 했다.

 모스크바는 ‘철도의 도시’다. 9개 기차역과 동서남북으로 뻗어 나가는 13개 선로가 있다. 이날 모스크바에 도착한 유라시아 친선특급은 이제 TSR에서 유럽철도로 갈아타고 폴란드 바르샤바와 독일 베를린까지 1871㎞를 더 달린다. 모스크바에선 3일간 머무르며 한·러 수교 25주념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를 한다. 27일 오후에는 소프라노 조수미씨 등이 참석하는 한·러 수교 25주년 기념 음악회가 열린다.

 바르샤바에선 독일과 폴란드의 학자, 친선특급 참가자 등 300여 명이 모여 ‘독일·폴란드 과거사 화해 경험 공유세미나’를 한다. 베를린에선 독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까지 행진을 하고 폐막 음악회를 연다. 한국과 독일 대학생들이 모여 분단과 통일의 경험을 나누는 토론회도 준비돼 있다.

모스크바=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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