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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침체, 일시적 요인 아닌 구조적…구조개혁 외에는 답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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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한국 경제가 올 2분기에 전기대비로 0.3% 성장하는데 그쳤다. 재정절벽 등으로 경제성장률이 크게 낮아졌던 지난해 4분기 수준으로 다시 뒷걸음 친 것이다. 내용을 보면 더 우울하다. 세계경제 성장세 둔화 등의 영향으로 순수출의 성장기여도는 4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여기에 완만하게나마 개선되던 내수도 민간소비를 중심으로 재차 약화하면서 성장기여도가 14분기의 1.0%포인트에서 0.5%포인트로 낮아졌다. 그나마 이 정도도 양호한 흐름을 보이는 건설투자의 성장기여도가 0.3%포인트였기에 가능했다.

그리스 문제, 중국의 주가 하락 등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기는 했지만 저유가가 지속하고 금리인하 및 재정 조기집행이 있었음에도 우리 경제의 성장세가 크게 둔화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메르스와 가뭄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메르스의 경우, 부정적인 영향이 6월에 집중된 것이 사실이지만 서비스업종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다. 특히, 미약하게나마 개선되던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과 운수 및 보관업은 전기대비로 각각 -0.5% 및 -1.3%를 기록했다. 그 결과 내수 회복을 주도할 것으로 기대되던 민간소비는 오히려 전기대비로 0.3%의 역성장을 기록했다. 가뭄에 따른 피해도 무시하기 힘들다. 2분기에 농림어업은 전기대비로 11.1%의 감소를 기록하여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음에도 성장기여도가 -0.2%포인트나 되었다.

그러나 우리 경제에 누적되어 있는 구조적 문제들이 성장세를 제약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메르스의 영향이 나타나기 이전인 4~5월에 이미 광공업 생산이 감소를 기록하고 투자도 애초 예상보다 저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우리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징후들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체 기업 중 부실기업 비중이 15.6%에 달해

먼저 기업부문. 한국의 수출시장 점유율이 금융위기 이후 정체된 가운데 제조업의 자원배분 효율성은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러한 자원배분의 효율성 하락은 제조업의 생산성 증가율을 연평균 약 0.6%포인트 가량 하락시킬 정도의 심각한 수준이다. 효율적 자원배분을 위해서는 부실기업 정리가 필수적인데, KDI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체기업 자산에서 부실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15.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수치는 1990년대 경기불황을 겪으면서 5% 내외에서 15% 내외까지 급증한 일본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노동시장의 경우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이중구조가 심화하면서 생산성 향상이 고용 확대로 이어지기보다는 정규직의 임금 인상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나 인적자원 배분기능이 위축됐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다음 가계부문. 소득 증가세가 정체된 가운데 50대 이상 고령층을 중심으로 평균적인 소비성향(소득에서 소비지출이 차지한 비중)이 하락하면서 민간소비를 제약하고 있다. 특히, 전 연령층에서 나타나는 소비성향의 하락은 기대수명이 증가함에 따라 은퇴 이후의 생활유지에 대한 불안이 전 연령계층으로 퍼지는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한편, 가계부채는 빠른 속도로 증가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2014년 기준 73%)은 높은 수준이다. 특히, 50대 이상 연령층이 차지하는 가계부채 비중이 주요국보다 높다는 사실은 이들이 은퇴하는 시점부터 소득이 급감하면서 상환능력이 크게 취약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공부문의 기초 여건도 약화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국세수입이 예산상의 목표치를 3년 연속으로 밑돌면서 정상적인 재정운용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으며, 재정수지 적자폭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아울러 물가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를 큰 폭으로 밑도는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기대인플레이션이 하락하고 통화당국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신뢰도 약화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를 논의하기에 앞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현 경제상황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다. 일본이 소위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한 원인 중 하나는 추세적인 경제성장률 하락을 일시적인 경기침체로 판단해 단기적 경기부양 정책을 반복한 초기 대응 실패이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이미 언급한 구조적 요인 이외에도 인구고령화에 따른 노동투입 감소와 투자수요 위축의 영향으로 잠재성장률이 점차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지속하는 투자 부진을 감안할 때, 잠재성장률이 이미 3% 내외까지 하락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러한 가운데 총수요는 내수부진으로 잠재성장률을 지속적으로 밑돌고 있다. 이는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제고하기 위한 총공급 정책과 경기하강 압력을 완충할 수 있는 총수요 정책이 모두 필요함을 시사한다.

총공급 정책과 총수요 정책 모두 필요

총공급 정책으로 제한된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구조개혁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부실기업 정리를 통한 금융자원의 효율성 증대이다. 장기간 금융지원에 의존하여 연명하는 기업들은 한정된 금융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할 뿐 아니라 여타 견실한 기업의 고용 및 투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부실기업 정리는 금융자원이 보다 생산적인 부문으로 유입되도록 할 수 있으며, 보다 활발한 진입과 퇴출을 유발하여 경제전체의 역동성도 제고할 수 있다.

둘째,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를 통한 인적자원의 효율성 확대이다.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아 노동수요가 위축되는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을 유연하게 생산성이 높은 산업으로 이동시킬 수 있어야 한정된 인적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임금격차 등의 사회적 문제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규직 특히 경제력 집중이 심하고 노조가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에 대한 고용보호 수준을 완화하는 한편,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줄여나가야 한다. 이와 함께 정년연장에 상응하여 연공서열과 같은 경직적인 임금제도를 성과중심으로 개편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셋째, 상품시장에 대한 규제합리화이다. 금융, 노동과 같은 요소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더라도 상품시장에 왜곡이 존재하는 경우 경제 전반의 생산성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독과점 및 담합 등 시장지배력을 이용한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행위를 철저히 시정함으로써 공정경쟁의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중소기업에 대해서도 일괄적인 보호 및 지원정책을 펴지 말고 대신 연혁이 낮은 신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성장가능성을 고려하여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총수요 정책은 잠재성장률 확충을 위한 구조개혁이 촉발할 수 있는 경기하강 압력을 완충하는 기재로 활용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금번에 편성한 11조5639억원의 추가경정에산은 메르스와 가뭄의 영향도 있지만 강력한 구조개혁으로의 국면전환을 위한 것으로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만, 향후 재정정책은 과감한 지출구조조정과 세입확충을 통해 재정건전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선 사회간접자본(SOC) 등 경제 분야뿐 아니라 그동안 성역으로 여겨져 왔던 연구개발(R&D) 및 복지 분야에 대해서도 지출 효율성을 제고함으로써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지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통화정책도 현재의 낮은 물가상승세가 물가안정목표 범위에 안착할 때까지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통화당국은 물가안정목표 준수를 우선적인 정책목표로 설정하고, 가계부채 등 금융안정과 관련해서는 금융당국이 정책을 주도해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금융위기 이후 통화당국에 금융안정이라는 목표를 추가시켰으나, 금융안정은 물가안정과 달리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지표가 없다는 점에서 모호할 뿐 아니라, 이와 관련한 정책수단은 여전히 금융당국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에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협하는 도전 요인이 산적해 있다. 위축될 필요는 없다. 한국뿐 아니라 주요국들 또한 구조개혁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일본은 지난 20여 년간 지연된 개혁과제들이 누적되어 있으며, 중국도 부동산 시장 버블 등 과잉 투자를 해소하는 가운데 소비 중심의 성장 구조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이다. 유로존 경제는 재정위기 국가를 중심으로 생산성 및 재정건전성을 제고하고, 역내 불균형도 해소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현 상황이 우리 경제에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가 먼저 고통스런 과정을 견디고 생산성 향상을 이루어낸다면 그 과실 또한 기대 이상일 것이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격언을 곱씹어 볼 때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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