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욕도 처음, 담배도 처음 … 진짜 나쁜놈 됐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영화 ‘베테랑’에서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를 연기하며 첫 악역에 도전한 유아인. 류승완 감독은 “유아인의 얼굴에 깃든 천진함이 조태오를 더욱 기이한 인물로 만들었다”고 평했다. [사진 CJ E&M]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재벌 3세. 미워도 이렇게 미울 수 없다. 형사 액션물 ‘베테랑’(8월 5일 개봉, 류승완 감독)에서 유아인(29)이 연기한 조태오다.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황정민)의 수사를 이리저리 빠져나가며 “나한테 이러고 뒷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는 안하무인 격인 행동을 보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영화는 서도철 형사와 망나니 재벌 3세의 팽팽한 기싸움 때문에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황정민과 유아인, 두 배우의 열연 덕분이기도 하다. ‘베테랑’에 출연한 유아인에게 TV 드라마 ‘밀회’(JTBC, 2014)에서 천재 피아니스트 선재가 보여준 순수한 모습은 없다. 이보다 더할 수 없는 ‘나쁜 놈’만 있을 뿐이다. 왜 이제야 처음으로 악역을 맡았나 싶을 정도다.

 - 조태오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순수한 악(惡)의 화신이다.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 좋았다. 어차피 인물의 역사를 조명하는 영화가 아니다. 왜 그렇게 나쁜 인간이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니, 온당치 못한 사회 안에서 악의 축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는 역할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 미소가 이렇게 비열해 보이는 건 처음이다.

 “하하. 내가 악역에 어울리는 강렬한 생김새는 아니지 않나. 조태오와 나의 접점은 오히려 천진함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인상 쓰고 목에 힘주는 것보다 더 강렬한 효과를 노렸다. 까르르 웃으면서 나쁜 짓을 해대면 정말 얄미울 테니까.”

 ‘베테랑’은 속이 후련한 액션영화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7, 노동석 감독) 같은 독립영화 혹은 ‘완득이’(2011, 이한 감독) ‘깡철이’(2013, 안권태 감독) 등 잔잔한 드라마에 애정을 보여 온 유아인에게는 사실상 첫 장르영화인 셈이다. 그는 “내게 이런 영화가 필요한 시기였다”고 말했다. 30대를 앞두고 배우로서 새로운 얼굴을 준비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황정민·왼쪽)과 팽팽하게 대립하는 조태오(유아인). 유아인은 황정민에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사진 CJ E&M]

 - 기존의 마음가짐과 무엇이 다른 건가.

 “지금까지는 청춘의 아이콘이 되고 싶다는 욕심을 영화에 투영했다. 반항아 역할을 주로 맡으면서, 항상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나 자신을 보여주려 했다. 마치 필모그래피가 내 청춘의 기록인양. 막상 대단한 청춘영화를 남긴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나를 온전히 벗고 연기한 건 ‘베테랑’이 처음이다.”

 극중에서 조태오는 종합격투기를 즐긴다. 덕분에 유아인은 직접 글러브를 끼고 바닥을 구르며 액션을 소화했다. “그동안 몸 쓰기 싫어서 액션영화 안 했는데 원없이 썼다(웃음).” 백미는 극 후반의 자동차 추격 장면이다. 이성을 잃은 조태오가 폭주하고, 서도철이 따라붙는다. 손에 땀을 쥐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 강도 높은 액션을 보여줬는데.

 “일주일 동안 찍었다. 워낙 속도감 있는 장면인 데다 몸이 안 좋을 때라 무척 힘들었다. 액션보다는 서도철에게 욕을 한 게 기억에 남는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애드리브였는데, 영화에서 욕을 처음 해봤다. 극중에서 담배 핀 것도 처음이다. 그동안 정말 말도 안 되게 착한 반항아였다.”

 드라마 ‘밀회’ 이후로 그는 연기 폭을 넓혀 가고 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노력 정도가 아니라 용을 쓰고 있는” 시기다. ‘베테랑’의 악역 조태오에 이어 영화 ‘사도’(9월 개봉, 이준익 감독)에서 아버지 영조(송강호)와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는 사도세자를 연기했다. 유아인은 ‘베테랑’과 ‘사도’를 가리켜 “칼을 가는 심정으로 찍은 영화”라고 말했다.

 - 연기 욕심에선가.

 “배우로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다. 경쟁력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전엔 또래 배우들을 의식할 때가 많았다. 이제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다양한 작품 안에서 놀고 싶다.”

 - 쟁쟁한 선배들과 투톱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머리 좀 컸다고 얕은 수를 쓰면 바로 들키는 기분이다. 어떻게 하면 그들 앞에 떳떳한 파트너로 설 수 있을까 늘 고민했다. 부끄러움을 느껴야 좋은 인간으로 성장하듯, 연기하면서도 계속 부끄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간 많이 배웠다.”

  이은선 기자 haroo@joongang.co.kr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정현목 기자): 화끈한 맨몸 액션과 통쾌한 카타르시스, 그리고 웃음이 적절한 비율로 버무려진 오락영화다. 응징해야 할 사회악의 실체가 ‘공공의 적’보다 더 비열하고 현실적이어서, 주인공 형사에 저절로 감정이입된다.

★★★★(장성란 기자): 캐릭터·연기·이야기·주제·액션·코미디가 시종일관 유쾌한 박자를 타고 흐른다. 어디 하나 속이 후련하지 않은 데가 없다. 류승완 감독의 최고작이자 잘 빠진 오락 액션영화의 모범이라 부를 만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