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가 나의 양떼 … ‘1호 구조자’와 평생가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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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 15명이 2012년 12월 김성은 목사(가운데 앉은 사람)의 도움으로 탈북한 뒤 제3국에서 함께 찍은 사진. 이중 일부는 북한 가족의 신변 위협을 우려해 얼굴 공개를 꺼렸다. [사진 김성은 목사]

꽃제비. 먹을 것, 입을 옷을 찾아 가난과 추위 속을 떠도는 북한의 아이들을 부르는 말이다. 지난 16년간 꽃제비들의 탈출을 도운 이가 있다. 갈렙선교회 김성은(50) 목사다.

 “두만강 유역에서 선교를 하다 처음 탈북자들을 만났어요. 그 순간 생각했죠. 이게 내 사명이구나.”

 김 목사는 2000년 1월부터 탈북자들의 탈출을 도왔다. 2009년 최초로 서해를 통해 어선에 탈북자 4명을 태워 입국시킨 것도 그다. 그는 “정확한 숫자를 밝힐 순 없지만 직간접으로 탈북을 도운 사람이 수백 명이 넘는다”며 “비행기나 배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탈북자들을 국내로 데려왔다”고 했다.

 처음 탈북자 지원을 시작했을 때 북한-중국 국경엔 구걸하러 다니는 탈북자들이 무수히 많았다. 김 목사는 당시 두만강 부근 산 속에서 농사를 지으며 성경 공부를 하던 탈북자 일행을 만났고, 그중 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됐다. 반드시 한국에 함께 가고 싶었다. 그러나 요즘 같은 ‘탈북 루트’가 없었다. 김 목사는 중국 전역과 동남아·몽골 등을 돌았고, 결국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그 여성과 결혼도 했다. ‘1호 구조자’가 아내가 된 것이다. 인연을 맺은 탈북자들이 늘면서 정보도 쌓이게 됐다.

 “북한의 참혹한 현실을 영상으로 찍어 보내기도 하고, ‘아이가 이번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 같다’며 직접 도움을 요청하기도 해요. 그러면 나서지 않을 수 없죠.”

 그렇게 2012년 구출한 아이가 신혁이다. 당시 신혁이는 어머니가 중국으로 떠나고 아버지가 숨진 뒤 구걸을 하며 살던 일곱 살 꽃제비였다. 영하 25도의 혹한과 배고픔을 견뎌낸 신혁이는 김 목사 도움으로 한국으로 들어왔고, 그 탈출 과정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김 목사는 아들 같던 신혁이와 만나지 못하고 있다. 김 목사는 “저를 믿고 목숨 걸고 탈출한 아이들인데 한국에 와서 국가 지정 시설로 보내지고 나면 소식도 알기 어렵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 목사의 목표는 북한에서 죽어가는 더 많은 꽃제비들을 살리고 한국 정착을 돕는 것이다. 충남 천안시의 교회 건물에 탈북자들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를 만들고, 지원 시설을 세울 계획이다.

 “반드시 구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끝내 데려오지 못해 북한으로 붙잡혀간 아이들이 가장 마음에 걸려요. 몇 명이 나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북한 주민을 돕는 일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이들의 문제니까요.”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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