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영화가 삶을 가르쳐준 순간 - 꿈 제작소 난장판 장면은 내 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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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 ‘인사이드 아웃’ 애니메이터 오수형

‘인사이드 아웃’이 재기 발랄하게 그려낸 마음속 세상에는 픽사의 한인 애니메이터 오수형(에릭 오, 31)의 손길도 묻어 있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UCLA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한 그는 2010년 픽사에 입사해 ‘메리다와 마법의 숲’(2012, 마크 앤드류스·브렌다 채프먼 감독) ‘몬스터 대학교’(2013, 댄 스캔론 감독) ‘인사이드 아웃’ 등의 애니메이터로 활약해 왔다. 또한 그는 2007년부터 개인적으로 작업한 독립 단편 애니메이션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5월 중순, 국제 학회 ‘서울디지털포럼’ 참석차 한국을 찾은 그를 미리 만났다.

애니메이터의 역할 “애니메이터는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는 사람이다. 캐릭터를 극 중 상황과 감정에 맞게 움직여 연기를 시키는 셈이다. ‘인사이드 아웃’의 애니메이터는 40여 명이었다. 그들 모두가 각 캐릭터의 성격과 행동의 특성을 똑같이 파악해야 일관된 캐릭터가 나온다. 그래서 수시로 회의를 한다. 어떤 캐릭터가 물 마시는 장면 하나를 놓고, 컵을 오른손으로 들 건지 왼손으로 들 건지, 빨대는 몇 번 빨 건지, 눈은 언제 얼마나 깜빡일 건지 등등에 대해 몇 시간씩 토론한다.”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여러 명의 애니메이터가 영화 전체를 잘게 쪼게 작업하는 식이라, 영화 곳곳에 내 손길이 묻어 있다.

특히 라일리의 마음속 세상을 헤매던 기쁨과 슬픔, 빙봉이 꿈 제작소에 도착해 촬영장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장면은 내가 도맡아 작업했다.” 애니메이션을 꿈꾸다 “어렸을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면 로보트 태권 브이, 둘리, 닌자 거북이 같은 캐릭터를 열심히 따라 그렸다. 특히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1992, 론 클레멘츠·존 머스커 감독)의 지니(로빈 윌리엄스)를 정말 좋아했다. 하도 그려서 지금도 생김새를 외울 정도다. 대학 졸업 작품으로 첫 단편 애니메이션 ‘The Bag’(2007)을 만들면서 독립 애니메이션에 흥미가 생겼다.

픽사에 입사한 후에도 픽사 애니메이션 작업과 개인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개인 작품을 꾸준히 만드는 이유 “매일 조금씩 짬을 내서 개인 작업을 한다. 힘들긴 하지만 하루 한 시간 정도는 ‘내가 하고 싶은 것,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을 위해 써야 인생이 정당해지는 것 아닐까. 픽사 작품을 만들면서도 머릿속에 늘 따로 작업하고 싶은 것이 떠오른다. 그걸 만들지 못하면 오히려 삶의 균형이 깨질 것 같다.

동료들이 픽사 이름으로 단편 연출을 해 보라고 권하기도 하는데, 픽사 감성의 이야기가 죽어도 안 떠오른다(웃음). 개인 작업으로는 보다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다.” 픽사 애니메이션이 특별한 이유 “디즈니·픽사의 CCO(Chief Creative Officer, 최고 제작 책임자) 존 라세터가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있다. ‘이야기가 열쇠다’란 말이다.

픽사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건 돈을 벌기 위해서나, 장난감을 팔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 이야기를 세상에 선보여야 한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기획·개발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펼치는 데 필요한 모든 자원과 인력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다. 그것이 최고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비결 아닐까.”

글=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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