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한밤 빈소 방문 … 국정원 “삭제 자료 복원해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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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직원 임모(45)씨의 자살로 이탈리아 해킹팀사(社)의 자료 유출에서 시작된 해킹 의혹 공방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임씨가 남긴 유서를 놓고 새정치민주연합이 추가 의혹을 제기하자 새누리당과 국정원은 해명을 쏟아내고 있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19일 밤 10시쯤 1·2·3차장과 기조실장 등 국정원 간부 등과 함께 임씨의 빈소가 차려진 경기도 용인 ‘평온의 숲’을 찾아 조문했다. 국정원 관계자들은 "이번만큼은 근거 없는 정치권의 의혹들에 당당하게 맞설 각오”라고 내부의 격앙된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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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씨 역할은=국회 정보위의 새누리당 간사인 이철우 의원은 19일 국정원을 상대로 알아낸 사실이라며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 의원은 임씨의 역할과 관련해 “문제가 된 (해킹) 프로그램을 직접 구입하고 사용한 직원”이라며 “대상자가 정해지면 e메일에 (해킹하기 위한 악성코드를) 심는 기술자였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여당 정보위원도 “4인1조로 된 팀원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주로 산업스파이 등을 수사하는 3차장 소속이었다”고 말했다. ‘단순 기술직’이었다는 것이다.

 ◆삭제된 자료는=임씨는 유서에서 “대(對)테러·대북공작 활동에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했다”고 밝혔다. “내국인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하면서다. 국정원도 같은 주장을 폈다. 이 의원은 “대테러국과 대북공작국만 임씨가 속해 있는 부서로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고 한다”며 “그런 만큼 내국인에 대한 자료 요청은 있을 수 없다”고 국정원이 보고해 온 내용을 전했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삭제된 자료가 정당한 대테러·대북공작 대상자의 이름으로 추정된다”며 “복원되면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임씨가 지운 자료는 ‘디지털 포렌식(삭제된 자료의 복원 등 전산자료 수집·분석 기법)’으로 100% 복원이 가능하다”고 새누리당에 보고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오늘(19일) 밤 안에 (복원 내용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며 “하지만 상세한 내용은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삭제된 자료를 복원하는 게 이렇게 손쉬운데 왜 전문가인 임씨가 굳이 삭제를 했는지도 의문이다. 유서에 적힌 삭제 이유는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해서”와 “혹시나 오해를 일으킬(까봐)”였다. 이에 대해 국정원 측은 “‘대테러·대북공작 대상자들이 노출되면 안 되는데’ 하고 임씨가 걱정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며 내국인은 아니지만 국정원이 특정인의 뒤를 캔 것 자체가 문제가 될까 우려해 삭제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이 의원은 “국정원에 임씨가 자료를 삭제한 이유를 묻자 ‘4일간 잠도 안 자고 일하면서 공황 상태에서 착각하지 않았겠느냐’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신경민 의원은 “임씨가 내국인 사찰을 안 했다고 소명만 되면, (오히려) 국가로부터 훈·포장을 받아야 할 일”이라며 결국 임씨의 활동이 정당한 국정원의 권한에 속하지 않아 자료를 삭제한 게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왜 자살까지 했나=국정원의 해명대로라면 임씨가 내국인을 사찰했을 가능성은 없다. 그런데도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임씨는 유서에서 자료를 삭제했다고 밝힌 뒤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라고 했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이병호 국정원장이 지난 17일 ‘이번 사안과 관련해 모든 걸 공개하겠다’고 한 뒤 임씨가 전전긍긍한 것 같다”고 했다. 종합하면 자료를 삭제한 자신의 실수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한 보안 전문가는 “복원을 해도 한 차례 삭제했던 기록은 남기 때문에 책임을 면하기는 힘들다고 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 사정에 밝은 정부 관계자는 “아마 임씨가 친북 외국 인사들을 유인하기 위한 작업(국내 맛집 정보 관련 문자메시지 작성 등)을 했던 게 자칫 내국인 사찰로 의심을 받을 것이라고 혼자 판단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 사정기관 담당자는 “임씨가 장비 구입 과정에서 국정원을 가리키는 ‘5163부대’라는 암호를 버젓이 쓴 점 등을 놓고 기관 내에서 ‘아쉽다’는 얘기들이 있었다”며 “이런 기류도 임씨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했다.

남궁욱·이지상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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