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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인성교육은 지식 담을 제대로 된 그릇 빚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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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충남 아산시 신리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강당에서 ‘인성 딱지’를 들고 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인정’ ‘사랑’ 등의 단어가 쓰인 대형 딱지로 ‘괴롭히기’ ‘욕하기’ 등의 단어를 쳐서 뒤집는 ‘정의의 딱지치기’ 게임을 한다. 이 학교 김성수 교장은 “놀이를 통한 인성교육으로 학교폭력을 없앴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21일부터 전국 1만2000개 초·중·고교에서 인성교육이 의무화된다. 이날 발효되는 인성교육진흥법과 시행령에 따른 일이다. ‘올바른 인성을 갖춘 시민을 육성해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1조)이 법의 목표다.

 인성교육이 법으로 의무화되는 것은 세계 최초의 일이다. 입시 위주의 학교 풍토가 다소 바뀌게 될 것이란 전망도 있지만 인성교육과 관련한 사교육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교육부가 올해 초 대학 입시에서의 인성평가 방침을 세웠다가 사교육 문제가 대두되자 지난 13일 철회하는 등 법 시행 전부터 논란이 있었다. 이 같은 부작용은 최소화하면서 법 취지에 맞는 인성교육은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인성교육진흥법 제정 및 시행의 주역 5인으로부터 그 해법을 들어봤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법 제정에 앞장섰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정 의장은 여야 의원들을 설득하며 지난해 12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199명 전원의 만장일치를 이끌어냈다. 그는 법 시행 후 가장 필요한 과제로 범국민적 인성 운동을 제시했다. “학교 인성교육만 명시해놓은 법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려면 가정과 사회가 함께 실천에 나서야 한다. 모든 사회 주체가 인성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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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인성교육실천포럼 대표를 맡고 있는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은 “학교만 노력해서는 큰 효과를 내기 힘들다. 기업에서도 인성 바른 인재가 우선적으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채용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은림 경희대 교육대학원장은 인성교육의 개념부터 재정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 원장은 2013년 본지 ‘중학생 리포트’를 통해 인성을 도덕성·사회성·감성으로 세분화하며 21세기에 필요한 인성교육의 이론적 틀을 제시했다. 그는 “인성교육을 특정 가치를 주입하는 과거의 윤리교육으로만 생각해선 안 된다. 자기 조절과 절제처럼 감성적인 부분도 오늘날 꼭 필요한 인성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인성교육진흥법 초안 작성에 참여한 정창우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도덕적 인성과 시민적 인성의 구분을 제안했다. 정 교수는 “바른 품성에 따른 행위 규칙을 가르치는 도덕교육도 필요하지만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량을 기르는 시민적 인성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대학 입시에서 인성을 평가해 반영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정의화 의장은 “인성은 교육될 수 있지만 측정될 순 없다. 사람의 인성을 점수로 매기는 것은 반인성적 행위”라고 말했다. 정창우 교수도 “정책과 프로그램의 실효성을 판단하기 위한 평가는 있어야 하지만 개별 학생의 인성을 서열화하기 위한 평가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기관 평가에 대한 결과도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 데 사용해야지 상벌의 근거가 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세계시민 교육과의 연계를 검토 중이다. 2015년 교육정책의 첫째 과제를 인성교육으로 설정한 그는 “지식 정보의 주기가 짧은 현대사회에서 학교는 지식을 담는 제대로 된 그릇을 키우는 교육을 해야 한다. 인성교육은 바로 그런 도자기를 빚는 교육이다”고 말했다. 황 부총리는 “세계시민으로서 인류 사회에 공헌하도록 하는 교육도 중요하다. 지난 5월 세계교육포럼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세계시민교육으로 인성교육을 발전시키겠다”고 덧붙였다.

 정병국 의원은 “인성교육진흥법의 최종 목표는 이 법이 없어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 시행을 계기로 교육철학의 근간을 다시 짜야 한다. 인성교육이 별도 과목처럼 따로따로 이뤄져선 안 되고 모든 수업에서 교사들이 인성교육에 열정을 갖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지은림 원장도 “선진국은 모두 교과목 중심에서 역량 중심 교육과정으로 개편하고 있다. 국어·수학·영어처럼 학업 중심이 아니라 문제해결력·소통능력과 같은 실생활에 필요한 역량을 기르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의화 의장은 “지금 학교에선 공부 잘하는 것만이 능사”라며 “앞으론 왜 잘해야 하는지, 성공한 후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본질적인 고민이 담긴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교육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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