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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개인 행로’ 경고했는데 … 정치인 장관들 “총선 출마할 생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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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에게 개인적 행로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오직 국민을 위한 헌신과 봉사로 나라 경제와 국민의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하면서다.

 일주일 뒤인 지난 14일.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20대 총선에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김 장관은 “내년 총선에 출마할 생각이다. (장관들이 출마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한 날짜인 내년 1월 14일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답변했다.

 김 장관의 이런 발언은 국회의원을 겸하고 있는 정치인 장관들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시각이다.

 박 대통령이 ‘개인 행로 불가’란 엄명을 내리긴 했지만 정치인 장관들의 마음은 이미 ‘콩밭’(내년 총선)에 가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내각엔 현재 김 장관 외에도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국회의원을 겸직하고 있다.

 김 장관은 물론이고 최·황 부총리와 두 명의 유 장관 모두 내년 총선 출마 의지를 밝히고 있다. 최 부총리는 지난 5월 초 해외 출장길에 “나는 본래 정치인”이라며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에서 비판이 나오자 “일단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겠다”며 한발 물러선 상황이지만 그는 최근 사석에서 “올해 정기국회에서 내년 예산안이 통과되면(12월 2일이 예산안 법정 시한) 당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황 부총리 역시 내년 총선 출마 의지가 강하다. 최근 청와대 관계자에게 총선 출마 희망을 전했지만 아무 대답을 듣지 못해 답답해하고 있다는 얘기도 여권 내에서 돌고 있다.

 역시 출마 의사가 분명한 유일호·유기준 장관의 경우는 지난 3월 나란히 장관에 임명돼 이제 4개월가량 재직한 상태다. 내년 1월까지 재직하더라도 10개월밖에 장관직을 채우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새누리당에서조차 “정치인인 장관이 총선에 출마하는 걸 무조건 비판할 순 없지만장관들이 스스로 사퇴 시한(내년 1월 14일)을 정해 놓고 직무를 수행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새누리당 핵심 당직자는 “‘갈 날’을 받아둔 장관들이 제대로 부처를 장악하고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교육부총리의 경우 개혁의 과제는 산더미인데 내년 총선을 의식하다 보니 대학 구조 개혁 등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당직자는 “재정전문가인 유일호 장관을 국토부로 보낸 건 정부 재정에 부담이 안 되는 선에서 주택 경기를 살리라는 뜻이 담겼고, 유기준 장관에게는 해수부를 정상화시키라는 임무를 맡긴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총선에 나가겠다며 이런 의무를 소홀히 하는 장관들을 어떻게 보겠느냐”고 되물었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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