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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시외·광역버스, 휠체어 승강장비 설치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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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국 고속버스의 휠체어 승강장비. 서울중앙지법은 10일 “시외버스의 휠체어 승강장비 미설치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판결했다. [사진 국가인권위]

시외버스와 광역버스에 휠체어 승강장비를 설치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며 법원이 직권으로 버스회사에 시정명령을 했다.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보장한 첫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6부(부장 지영난)는 10일 뇌병변장애인인 김모씨 등 5명이 정부와 서울시·경기도, 버스회사 두 곳 등을 상대로 낸 차별 구제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경기도에 살고 있는 김씨 등은 지난해 시외·광역버스에 저상버스 또는 휠체어 승강장비가 없어 장애인·노인·영유아 동반자 등 교통약자의 시외 이동권이 제한된다”며 소송을 냈다. 국토교통부 장관과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금호고속, 명성운수 등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과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을 위반했다는 취지였다. 현재 전국 고속·시외버스 9500여 대에는 휠체어 승강장비가 마련돼 있지 않다. 저상버스도 시내버스 5400여 대밖에 없다.

 재판부는 금호고속 등 교통사업자의 관련 법률 위반만 인정했다. 재판부는 “노선버스 운송사업자는 장애인이 버스에 승하차하는 경우 사업자에게 과도한 부담이 되거나 현저히 곤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금호고속은 시외버스에, 명성운수는 광역급행형·직행좌석형·좌석형 버스에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이용할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하라”고 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버스회사에 대한 저상버스 도입 청구에 대해선 “교통사업자에게 도입 의무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국토부와 서울시·경기도에 “저상버스 도입계획을 수립해 달라”고 한 원고들의 청구 역시 저상버스 도입이 교통약자법상 의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번 판결은 장애인 차별행위에 대해 중지와 시정명령 등 법원의 적극적 조치를 규정한 장애인차별금지법 48조를 적용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후 7년이 지났지만 법원의 차별 시정명령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지난해 7월 전주지법 군산지원은 “장애인 직원에 대한 인사 불이익 조치를 철회하라”고 판결했다. 원고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태평양의 조병규 변호사는 “그간 장애인 차별에 대해 위자료 배상책임만 물었던 법원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통약자법에 따른 정책 시행에 소극적인 정부의 책임 부분이 빠져 있다”며 항소할 계획이라고 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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