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서가] '사례로 본 디자인과 브랜드 그리고 경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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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로 본 디자인과 브랜드 그리고 경쟁력/정경원 지음, 웅진북스, 3만5천원

미국 포드자동차는 각지고 둔탁한 차체의 T형 자동차만으로 1920년대까지 미국 자동차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20년대 후반 제너럴 모터스(GM)가 세계 최초로 디자인연구소를 설립해 고객의 취향을 반영한 시보레를 내놓으면서 GM의 시장점유율이 40%로 높아지고, 포드의 점유율은 20%대로 낮아졌다. 후발 주자인 GM이 디자인으로 불과 수년만에 포드를 꺾은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인 저자는 이제 디자인의 시대라고 단언한다. 토속적 디자인에 의존했던 농경시대나, 장식적 디자인 차원에 머물렀던 산업혁명기 때와 달리 산업시대의 표준적 디자인과 정보시대의 맞춤형 디자인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디지털 경제시대에 디자인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기업이나 세계적인 브랜드를 갖길 원한다. 세계 1위인 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는 6백96억달러(2002년 기준, 인터브랜드 조사)에 이른다.

이 같은 브랜드를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져질 수 있는 실체로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브랜드가 기업의 마음이라면 디자인은 얼굴이다. 브랜드의 힘은 바로 디자인에 의해 강화된다.

저자는 단순히 제품의 디자인을 좋게 만드는 것을 넘어 디자인 경영의 단계에 접어들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디자인 경영의 역할은 이미지 메이킹, 매력 창출, 문화 구현이다.

디자인 경영은 기업의 일관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상품이나 서비스가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독특한 매력을 부여할 뿐 아니라 소비자의 욕구를 찾아내 충족시켜줌으로써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디자인 경영을 하려면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이 중요하다. "디자인은 결국 CEO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이 때 CEO는 '한 팔 거리 정책(Arm's length policy)'을 펼치는게 좋다고 저자는 충고한다. CEO가 디자인에 충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비전문가가 지나치게 간섭하면 역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하이테크(high tech) 제품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가위 전문업체인 피스카스, 손잡이 달린 생활용품 '굿 그립'을 생산하는 옥소 인터내셔널 등은 로 테크(low tech)일지라도 디자인을 통해 훌륭한 상품으로 변신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디자인 측면에서도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한다.

미국 우수산업디자인상(IDEA)에서 지난 2년 연속 가장 많은 상을 받았던 삼성전자, 9.11 테러 이후 미국 완구시장에서 유명해진 캐터필러를 만든 오로라월드, 에어컨 휘센의 LG전자 등이 디자인 경영에 앞장 선 기업으로 제시된다.

외환위기 이후 주춤했다가 2000년대 들어 다시 활발해지고 있는 디자인 산업을 진흥시키기 위해선 디자인을 주요 국정 의제(어젠다)로 다뤄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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