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안하면 왕따"…초등교사가 '1일 왕따' 지정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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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지내야 하고 다른 아이들과 말을 해서도 안된다. 다른 학생이 ‘1일 왕따’ 학생과 접촉하면 그 학생도 ‘1일 왕따’가 된다.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이런 식으로 ‘1일 왕따’를 시켰다는 학부모들의 주장이 나왔다. 제주도의 한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들은 7일 “1학년 모 담임교사가 학생들을 왕따시킨다”며 학교 측에 문제를 제기했다.

학부모들에 따르면 선생님이 어떤 학생을 직접 가리키며 “1일 왕따”라고 외치면 해당 학생은 그날 반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게 된다.

학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들은 ‘1일 왕따’의 대표적인 사례는 숙제를 하지 않고 등교하는 경우다. 알림장 등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거나 글씨를 삐뚤게 쓰고 문제를 풀다가 우는 학생도 ‘1일 왕따’ 대상이다.

학부모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지난 3일. 이날 아이와 함께 숙제를 하던 학부모 A(49)씨는 “숙제할 책을 안 가져 왔다”며 아이가 갑자기 울자 “다음에 해도 된다”고 다독였다. 하지만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고 “숙제를 안 해가면 왕따를 당한다”고 얘기했다. 당황한 A씨는 다른 학부모들과 연락을 취했다. 학부모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5월 이후 ‘1일 왕따’를 직접 겪은 학생이 반 전체 24명 중 10명 이상이었다.

학부모들은 6~7일 학교를 찾아가 담임교사의 사과와 다른 학교로의 전출 등의 내용을 담은 호소문을 전달했다. 글에는 해당교사와 아이들을 분리해주고 2학기부터 담임을 교체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교장선생님의 공개 사과와 아이들 전원의 심리 치료 등도 요구했다.

학부모 A씨는 “해당교사가 ‘왕따’라는 단어를 실수로 써서 죄송스럽다는 지극히 형식적인 사과만 했다”며 “다른 학교에서 학생부장까지 했던 경험 많은 선생님이 아무 것도 모르는 1학년 어린 학생들에게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해당 학교 교장은 교감을 임시 담임으로 임명하는 등 수습에 나섰다. 해당 교사는 7일부터 병가 중이다. 교감은 “해당 교사의 진술에 따르면 ‘1일 왕따’라고 한 적이 3차례로, 한 번은 5월 말께 동료생을 괴롭힌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 목적이었고 이후 2차례 더 있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교장은 “진위 여부를 떠나 이런 일이 발생한 데 대해 송구스럽다”며 “8일까지 해당 교사의 소명을 받고 부모들 호소문도 당국에 보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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