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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수퍼 전파자…그들을 위한 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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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전문기자

1, 14, 16, 76.

 이 숫자의 공통점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수퍼 전파자’다. 정부가 감염 순서대로 붙였다. 1번 환자가 14번과 16번을, 14번이 76번 환자를 감염시켰다. 1번 환자는 30명, 14번 환자는 85명, 16번 환자는 23명, 76번 환자는 11명을 감염시켰다. 메르스 환자 186명 중 80%가 이들한테서 옮았다.

 지난달 22일 ‘수퍼 중의 수퍼’인 14번 환자의 퇴원 소식을 듣고 본지 취재진 4명이 나서 전화·문자 공세를 폈지만 무응답이었다. 그의 집을 찾아갔지만 문전박대 당했다. 무슨 말이든 듣고 싶어서였다. 그가 외부에 보인 첫 반응은 피자였다. 퇴원 일주일 후 외래진료를 받으러 서울대병원에 왔을 때 의료진에게 피자를 돌렸다. 완치에 대한 감사의 표시일 테지만 미안함의 의미가 들어 있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데 대한 미안함 말이다.

 16번 환자도 퇴원한 뒤 의료진에게 전화로 미안함을 표시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 같아 며칠간 잠을 못 잤다”고 말했다고 한다. 1번 환자도 처음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사실을 숨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메르스 증세가 시작되면서 정신이 혼미해져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고의로 말하지 않은 게 아니라는 얘기다.

 1, 14, 16번 환자의 다른 공통점은? 다른 환자 치료에 활용하도록 혈장을 제공했거나 제공 의사를 표시했다는 점이다. 1번 환자는 부인인 2번 환자가 제공했다. 2번 환자는 최초의 혈장제공자이기도 하다. 셋 다 자신이 수퍼 전파자라는 생각도 못했다. 76번 환자는 메르스 감염 사실조차 모른 채 세상을 떴다. 넷 다 일부러 퍼뜨린 게 아니다. 14번 환자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사흘간 머무는 바람에 감염자가 많았다. 그것도 경제적 부담 때문에 그런 것이다. 약 45만원에 달하는 1인실에 들어가기가 부담스러워 1만원 약간 넘는 6인실이 나길 기다렸다. 사흘 내내 자신이 메르스에 걸린 줄 몰랐다.

 한국 의료는 지난 20여 년 덩치만 커졌다. 18인 병실, 병실 규정 전무, 비보험 진료 양산하는 박리다매형 수가 구조, 가족 간병…. 재원 부족을 이유로 방치해온 구멍들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이런 걸 내버려두는 한 누구나 수퍼 전파자가 될 수 있다. 메르스 때문에 건강보험 지출이 최소한 2조원 이상 줄었을 것이다. 지금 12조원의 흑자도 있다. 돈을 써야 할 때는 써야 한다.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