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1만9000원짜리 커피가 존재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중앙SUNDAY 기획에디터

지난달 말 디올의 서울 청담동 매장 5층엔 ‘페이스트리계의 피카소’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마카롱 장인 피에르 에르메의 ‘디올 카페’가 문을 열었다. 이곳의 아메리카노(브라질 레드 이아파르 아메리카노) 한 잔 값은 1만9000원. 가장 싼 에스프레소도 한 잔에 1만6000원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서울 호텔의 평균 커피 가격(1만770원·호텔스닷컴 조사)을 훌쩍 웃도는 수준이다.

 “가격이 사악하다”는 평도 심심치 않게 나오지만 벌써 자리를 잡기 위해 대기해야 할 만큼 손님이 몰린다. “가격 대비 특별히 맛있지는 않지만 분위기로 먹는 곳이기에 가격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들이다. 그러니 이걸 보고 또 다른 한편에선 “밥값보다 비싼 커피 값에 헤프게 돈 쓰는 속물들”이라며 이곳을 찾는 손님을 싸잡아 비난하기도 한다. 1999년 스타벅스가 한국에 처음 진출했을 때 한 끼 식사보다 더 비싼 스타벅스 커피를 손에 든 여자를 허영 가득한 ‘된장녀’라고 손가락질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실 과거를 들춰 봐도 커피가 소박한 한 끼 식사보다 비쌌던 적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짜장면 값이 150~200원이던 76년 서울 명동의 여왕다방과 휘앙세다방 등에선 모카·비엔나·산토스라고 이름 붙인 ‘특제 원두 코피’ 한 잔에 200~300원씩 받았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계란 띄운 커피 역시 커피 값 올리기 위한 일종의 꼼수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어쨌든 이렇게 다방 ‘코피’ 값이 당시 순식간에 300원으로 뛰어오르자 당연히 여기저기서 불만이 튀어나왔다. “맛은 그대로인데 값만 올리는 건 속임수나 다름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로부터 벌써 4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커피 값을 둘러싼 논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최근 화제의 1만90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직접 마셔 봤다. 미각이 둔해서인지 늘 마시는 회사 1층 카페의 값싼 커피 맛보다 얼마나 더 좋은지 솔직히 가늠할 수 없었다. 다만 프리츠커상을 받은 프랑스 건축가 크리스티앙 드 포잠박과 인테리어 디자이너 피터 마리노의 카페에 앉아 영어로 메뉴를 설명하는 프랑스인 웨이터의 서빙을 받는 건 분명 다른 곳에선 하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특히나 밖에서 마시는 커피는 그냥 원가로만 가격을 매기기 어렵다. 단순한 기호품을 넘어 커피를 매개로 시간을 사고 공간을 사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욕먹으면서도 비싼 커피가 계속 존재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안혜리 중앙SUNDAY 기획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