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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의 문제를 피하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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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영어권 국가(영국·캐나다 등)의 한국인 유학생 사회에서 ‘철수’는 남성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은어다. 대여섯 해 전부터 상용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적 용례는 이렇다. “걔 철수야.” “헐, 철수 확실해?” “딱 봐도 철수잖아?” 옆에서 우연히 이런 대화를 들으면 철수만큼이나 서양에 흔한 ‘찰스(Charles)’에 대한 얘기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유래는 확인하지 못했다. ‘영희가 아닌 철수를 좋아하는 남자’라는 의미를 ‘철수’라는 한 단어에 담아 쓰는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여기에서 철수·영희는 한국 교과서가 만든 남녀의 대표 이름이다. 한국의 수많은 철수·영희씨와는 무관하다.

 ‘게이(gay)라는 말을 동성애자 스스로 금기시하지 않는 서양에서 왜 굳이 한국 학생들은 은어를 만들어 쓰고 있을까.’ 처음 ‘철수’ 화법에 대해 알게 됐을 때 이런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아무리 동성애가 ‘특별한 일도 아닌’ 나라에 살고 있어도 한국적 문화가 몸에 배어 있는 학생들은 ‘게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데 불편함과 어색함을 느끼고 있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결국 이 불편함의 근원은 성소수자(LGBT) 문제에 둔감한 우리 사회의 풍토다. 그 정도를 보여주는 일례가 있다. 서울시가 다음 달 강남역 부근에서 시범적으로 도입하는 택시 합승제다. 남성 승객과 여성 승객이 합승하게 되면 남성은 앞 조수석에, 여성은 뒷좌석에 앉아야 한다는 게 서울시의 지침이다. 합승하는 승객이 세 명일 경우에는 모두 동성이어야만 한다. ‘남녀칠세부동석’ 정신의 현대적 재해석처럼 보이는 이 촌스러운 정책의 취지를 외국인 친구에게 설명하자면 참으로 난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든 승객이 택시 기사에게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확인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당혹스럽다. 서울시 공무원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문제 때문에 백악관을 비롯해 미국 곳곳에서 남녀 구별이 없는 ‘성 중립 화장실’이 생겨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는 걸까.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성소수자 축제가 열리고, 이름난 영화감독이 동성혼을 인정해 달라고 소송을 내는 시대가 왔다. 그만큼 종교계의 반대 목소리도 세졌다. 더 이상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불편하고 어색하다고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사족: 시청 앞 행사 때 종교단체는 건너편에서 반대 집회를 열며 ‘호두까기 인형’ 발레 공연도 펼쳤다. 그런데 그 음악을 만든 차이콥스키도 ‘철수’였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