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용 휴가대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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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번 정초 나는 나의 의식속에 들어온 2개의 상반된 현실들을 머리속에 조화있게 정리하는 일에 크게 애를 먹고 있다. 엄청난 소비성향으로 치닫는 자가용 휴가대열과 김(해태)바자.
3일간의 신정휴가가 끝난후 손에 든 신문에서 나의 눈길을 끈것은 휴가기간중 전국 각지의 온천등 휴양지와 관광지에 몰려든 엄청난 자가용차의 행렬에 관한 기사였다.
호텔의 하루 숙박료가 10만원이라느니, 바가지 요금에 관한 것이 요점이었지만 내게는 참으로 잘들 살고 있구나, 여유있는 사람이 많구나, 하는 사실이 하나의 놀라움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겹쳐 떠오르는 것은 지난 연말 내가 관여하고 있는 서울신림동달동네 유아원의 담 보수비용을 마련키 위해 가졌던 김(해태) 바자였다.
심한 비로 서울에서도 빈민지역 대부분의 엄마들이 하루벌이 막노동을 나가 돌볼이 없는 동네 개구장이 1백40여명을 모아 돌보는 우리 유아원의 담이 무너진 것이다.
1백20여만원이 소요된다는 담의 보수를 구청에 요청했더니 60%를 보조할 터이니 나머지 40%는 유아원 측이 부담하라는 것이었다.
그 돈을 마련키위해 우리유아원의 후원단체인, 중년의 가정주부 10여명으로 구성된 관악회 멤버들은 김바자를 계획했다. 단가도 비교적 싸고 연말이면 선물용으로 좋아 손이 쉬우리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동안 관악회 회원들은 살림살이를 쪼갠 돈을 모아 유아원 시설과 비품을 마련해줬고 스카프바자·판화바자로 작은 기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1톳에 4천원, 4천5백원씩 하는 김을 도매시장에서 사다가 1천원의 웃돈을 얹어 친지들에게 파는 것이었다. 시중가보다는 5백원씩 싼값이지만 목표한 5백톳을 팔아 50여만원을 마련하는 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나역시 학기말 시험이다, 논문심사다 하여 그렇지 않아도 쫓기게 마련인 세모에 김보따 리를 들고 바람부는 거리로 나서기 몇차례였던가. 아직도 몇몇 회원들은 자기 몫으로 떠맡은 김보따리를 팔지도 못하고 집에 갖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자가용 휴가대열의 기사가 나간 다음날에는 다시 아프리카 이디오피아의 굶주림으로 머리통과 눈만 큰 어린이들의 처참한 사진을 싣고 있었다.
나는 빡빡한 살림비용을 쪼개 어려운 어린이를 돕는 뜻있는 주부들이 향락적인 자가용 휴가대열에 흔들리지 말았으면, 자가용으로 휴가여행을 다니는 사람들도 불우한 이웃에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하는 것을 새해의 바람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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