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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크 테토의 비정상의 눈

자식이 아버지께 진심을 전하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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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마크 테토
JTBC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출연자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미국은 아버지의 날이다. 한국에선 5월 8일 어버이날에 부모님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미국에선 어머니날(5월 둘째 주 일요일)과 아버지날(6월 셋째 주 일요일)이 별도로 있다. 어려서부터 마음을 표현하기는 어머니날이 아버지날보다 쉬웠다. 어머니날은 봄학기 중에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시절 매년 5월이면 선생님들이 어머니께 드릴 예쁜 종이꽃·그림·카드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어른이 된 뒤에도 어머니께 꽃을 사드리고 감사 편지를 쓰며 “사랑합니다”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반면 아버지날은 여름방학 중에 있어 아버지께 드릴 예쁜 공작물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없다. 마음 전달법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결국 실용적인 넥타이를 가장 많이 고른다. 어른이 된 뒤에도 아버지께 진심을 전하는 일이 여전히 어렵고 어색하다.

 신기하게도 아버지께 이를 전달할 방법을 찾은 것은 한국 생활을 통해서였다. 얼마 전 미국 집에 갔을 때 아버지와 의견 차이로 몇 분간 논쟁을 벌였는데 결국 내가 완전히 틀렸고, 내 태도가 아버지께 상처를 드렸음을 깨닫게 됐다. 사과하고 싶었지만 “죄송합니다(I’m sorry)”라는 말 정도론 턱없이 부족했다. 그 순간 갑자기 사과의 절을 하고 싶어졌다. 그것만이 내 마음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느껴졌다. 물론 절은 미국 문화에 없기 때문에 아버지도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화가 바탕이라는 한국 영화 ‘파파로티’에서 음악 선생님 상진은 조직폭력배 장호를 아들처럼 거둬 오페라 가수가 될 수 있도록 모든 위험을 감수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장호는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돌아서서 스승에게 큰절을 올린다. 이는 많은 말을 대신한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선생님은 저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존경합니다” 등등….

 미국 결혼식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으로 한국 결혼식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신랑·신부가 부모님께 올리는 큰절이다. 한국 친구 결혼식에서 이를 처음 봤을 때 “아, 이것이 바로 내가 아버지께 드리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바로 그 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의 큰절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의 나는 당신 덕분에 있는 것입니다.” 그 뒤로 결혼식에서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머나먼 한국 땅에서 살며 아버지께 가장 드리고 싶은 것이 아들의 진심을 담은 큰절이다.

마크 테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