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투표 대신 장기전 전략이 주효” 임기택 IMO 사무총장 당선 뒷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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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해양 대통령’으로 불리는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으로 임기택(59) 부산항만공사 사장이 당선된 지난달 30일 저녁. 해양수산부 직원들은 세종시 인근 식당에서 1차 투표 결과를 듣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IMO 사무총장 투표는 40개국 이사국이 한 표씩 던져 과반수를 차지한 1위 당선자가 나올 때까지 1시간 간격으로 수차례 열리는 방식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우리가 여수 엑스포 유치를 경험해 봐서 이런 투표 방식에 익숙하다. 이미 지지하는 나라를 다른 국가로 정한 이사국에는 ‘1차는 어렵겠지만 2차 투표부터는 우리를 찍어달라’고 부탁을 해놨다”고 말했다. 해수부의 예측대로 이날 임 후보는 5차 투표에서 26표를 얻어 역전에 성공하며 1위를 차지했다. 가장 유력한 당선 국가로 꼽혔던 덴마크는 지난해 9월부터 유세 활동을 시작했지만 한국은 올해 3월 마지막으로 출마 선언을 했다. 아무도 한국의 당선 가능성을 예상하지 못한 선거였다.

이번 선거에서는 출마한 6개 국가 중 유럽에서 2개가 나온 점이 운 좋게 작용했다. 1차 투표에서 12표를 얻어 1위를 차지한 덴마크에 같은 유럽 대륙에 속한 사이프러스가 4차 투표까지 따라 붙으면서 표를 분산시키는 효과를 냈다. 김민종 해수부 해사안전정책과장은 “사이프러스가 일찍 떨어졌다면 투표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 활동에서는 국회 외교통상위원장을 지낸 유기준 장관의 도움도 한 몫 했다. 유 장관은 외통위 시절 교류해온 외교부 직원들과 40개 이사국에 나가 있는 대사들에게 전폭적인 도움을 부탁했다. 대사들의 이름을 일일이 알고 있을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다. 해수부 관계자는 “2011년 고배를 마신 IMO 사무총장 선거 때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외교부의 지원이 있었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선거 전 기자들과 식사 자리에서 “국내 선거에서도 맞은편 당 후보가 2명이 나오는 지역에서는 무조건 당선된다”며 일찍부터 당선 가능성을 점쳤었다.

임 당선자도 지난 20년 동안 IMO 주요 인사들과 교류를 쌓는 등 준비를 꾸준히 해왔다. 1991년 IMO가 설립한 세계해사대학원을 졸업했고, 98~2001년 IMO 연락관과 2006~2009년 주 영국 대사관 국토해양관을 지내면서 현지 접촉을 늘렸다. 능숙한 영어 실력도 도움이 됐다. 경남 마산 출신인 임 당선자는 한국해양대학교를 나와 영어를 전문적으로 익힐 기회가 없었지만 독학으로 수준급에 이르렀다. 해수부 관계자는 “임 당선자 영어 실력 때문에 부산항만공사에 찾는 외국 고위 인사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한국인 최초로 IMO 사무총장이 나오면서 조선과 해운 업계도 환영 입장을 냈다. 한국선주협회·전국해양산업총연합회는 공동 성명을 통해 “임 당선자가 국제해양산업이 경제 발전을 든든히 받쳐주는 기간 산업으로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최기준 한국선주협회 과장은 “IMO가 선박 평형수 관리 방안과 같은 규정을 정하면 171개국이 모두 지켜야 한다”며 “한국인이 사무총장이 된 만큼 국내 회사들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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