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방비 증액은 자주적으로

중앙일보

입력

지난 3일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은 "주한미군의 전력 증강을 위해 2006년까지 미 의회가 1백10억달러를 지원키로 약속했으며, 이러한 미국의 지원에 상응하는 한국군의 투자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러포트 사령관의 발언은 지난 2일 한국을 방문한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의 "미국이 주한미군의 군사능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만큼 한국도 이에 상응하는 기여를 해야 한다"는 언급을 보다 구체화한 것이다.

*** 내정간섭 아닌 책임의 분담

미국이 주한미군의 군사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쓰려는 1백10억달러는 주로 제2사단 내의 2개 보병여단을 한개의 신속기동군(SBCT)대대로 대체하는 비용이다.

즉, 2006년까지 향후 3년에 걸쳐 주한미군 2사단을 한개의 여단으로 대체해 나가고 이들의 운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무기체계를 갖추기 위해 1백10억달러를 투자한다는 것이다.

이는 또 9.11테러 이후 택한 미국의 신(新)안보전략에 의해 주한미군을 테러 대응과 지역 안보에 중점을 두는 체제로 전환해 나가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주한미군의 전력증강이 한국 국방비 증액과 연동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미 군사동맹 체제는 연합방위를 근간으로 한다. 때문에 주한미군의 무기체계 변화는 한국군의 무기 현대화와 직접 연계된다.

따라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국방비 증액 요구를 '내정간섭'이라고 보는 것은 국제관계를 모르는 소아적인 발상이며, 한.미 군사동맹의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과거 미.소 냉전시절에 종종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대한 방위비 증대를 요구한 바 있고, 이는 공동방위체제하에서 응당 가능한 일로 간주돼 왔다.

국제관계는 힘과 이익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만큼 책임의 분담에 냉정한 것이다. 사실 우리 내부적으로도 국방비 증액 필요성은 꾸준히 대두돼 왔었다.

우리의 국방비 부담률은 1980년대의 국내총생산(GDP) 6%대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금은 GDP의 2.7%에 불과하다. 국제분쟁이나 국가간 대치상태에 있는 22개 주요 국가 중 국방비가 가장 낮게 책정돼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도 당선자 시절부터 국방비 증액에 관심을 표명해 왔고,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한국군의 현대화가 강조된 바 있다.

고건 국무총리는 국방예산과 관련, "국민의 정부 5년간 매년 방위비 비율을 줄여 현재는 GDP의 2.7%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앞으론 3%선을 넘어야 하며 내년 예산 편성 때부터 점차 반영돼야 한다"고 말해 국방비 증액이 참여정부의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촛불시위 이후 가장 빈번히 대두되는 용어 중 하나가 자주국방이다. 주권국가로서 국가를 스스로 방위한다는 것은 분명 책임인 동시에 권한이다.

그러나 이러한 권한을 즐기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노력과 투자가 전제돼야 한다. 그 투자가 바로 국방비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자주국방의 개념은 한.미 동맹을 폐기하고 혼자 나가자는 것이 아니다.

한.미 동맹의 우산 속에 남아 있되, 관성 법칙에 의해 한.미 동맹에 국방을 내맡겨온 지나친 의존심리를 벗어나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을 자주적으로 해 나가자는 것이다.

*** 한미동맹 의존심리 낮출 기회

여기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먼저, 적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 국가를 지켜 나가겠다는 철저한 안보의식과 의지다. 이를 위해서는 김정일 정권이 분명히 우리의 안보에 위협이라는 인식에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김정일 정권의 핵 개발을 더 이상 '설마'나 '민족'이라는 시각으로 희석해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 이러한 안보 위협에 자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에 해당하는 비용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동맹은 필요하다면서 비용분담을 거부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국방비 증액은 미국의 강요나 간섭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주도적이고 합리적으로 해야 한다. 이것이 자주적인 인식이며 여기서 자주국방은 시작된다.
송영선(한국 국방연구원/ 안보정책실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