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영화/12년 숙원 푼「영화법」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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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올해의 영화계에는 경사가 많았다.
이는 무엇보다 지난 12년 동안 모든 영화인들의 한결같은 숙원이었던 영화법 개정이 실현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우리 영화가 흥행과 수준면에서 모두 성공적인 실적을 거둠으로써 지난 몇년간의 깊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 회생의 가능성을 보여준 한해이기도 했다.
지난 2월 28일 정부가 영화인들의 여망에 따라 영화법 개정안을 마련하자 영화인들은 이를 전폭적으로 환영하면서 이 법안의 연내 국회 통과를 적극 추진해 왔다. 그러나 9월 정기국회가 거의 끝나가도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자 영화인들은『이번 회기 안으로 영화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내년부터 제작을 거부하겠다』는 극한결의까지 내걸었다.
드디어 정부의 영화법 개정안은 문공위 7인 소위의 절충안으로 일부 손질돼 18일 본회의에서 통과됨으로써 영화인들의 꿈은 이뤄졌다.
이로써 20개 영화사들만의 독점제작시대는 12년만에 막을 내리고 내년부터는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린 것이다.
올해도 예년과 비슷하게 모두 80여편의 국산 영화가 제작되었다. 그러나 예년과는 달리 흥행면에서나 수준면에서 모두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흥행면(서울 개봉관)에서 『고래사냥』(배창호 감독)이 42만 6천명을 동원, 77년의 『겨울여자』(58만 5천명)와 74년의『별들의 고향』(46만 4천명)에 이어 한국영화 사상 3번째의 기록을 세웠다.
이밖에도 『무릎과 무릎 사이』(26만여명), 『애마부인 2』(15만 6천뎡),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12만 8천명), 『수렁에서 건진 내 딸』(11만 9천명), 『바보선언』(10만 6천명), 『속 사랑하는 사람아』(10만 1천명) 등 모두 7편이 10만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 들였다.
이는 지난해 10만명 이상을 동원했던 영화가 고작 2편(『적도의 꽃』 『신서유기』)이었던 데 비하면 대단한 호황이었다.
특히 서울시 극장협회의 집계에 따르면 올해(11울말 현재) 는 국산영화 관객이 지난해에 비해 무려 15%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관객들이 국산영화에 큰 관심을 보였던 것을 알수 있다.
올해의 국산 영화는 비단 흥행면에서 뿐 아니라 질적 수준면에서도 발전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우리 영화가 몇몇 해외 영화제에서 그런대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물레야 물레야』(이두용 감독)가 지난 5월 칸영화제에서 본선에 울라「주목할 만한 영화」11편 가운데 1편으로 선정된 데 이어 11월의 시카고영화제에서는 촬영상(이성춘)을 수상해 영화계를 들뜨게 만들었다.
또『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배창호 감독)가 지난 6일 낭트(프랑스)의 제3대륙영화제에서 본선에 올라 특별상을 받았으며 제29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l2월 5∼8일)에서도『적도의 꽃』의 배창호 감독이 감독상을,『바보선언』(이장호 감독)이 특별상을 수상했다.
영화 배우들은 그동안의 여배우 판도가 바뀐 점이 큰 변화로 손꼽힌다. 70년대 후반부터 영화계의 주역을 도맡아온 장미희·정윤희·유지인양의 기존 트로이카체제가 물러나고 이미숙·원미경·이보희·김진아양이 새롭게 두각을 나타냈다. 이들은 올해 모두 5∼3편씩 골고루 출연, 여배우의 평준·다양화 현상을 보였다.
이러한 호조속에서도 영화계는 올해 몇 가지 뼈아픈 시련을 겪었다.
지난 6월 태여영화사가 제작하던 영화『비구니』(임권택 감독)는 비구니들의 거센 반발과 집단 시위에 부닥쳐 스스로 도중하차하고 말았다.
이 「비구니 파동」은 영화계에 다시 한번 창작자유의 한계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런가 하면 올 제23회 대종상영화제는 또다시 잡음과 말썽을 일으켜 뜻 있는 영화인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감독상·심사결정 과정에서 영화진흥공사가 개입, 당초 수상자였던 배창호 감독이 정진우 감독으로 뒤바뀐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진흥공사측은 며칠 후 이에 대한 해명을 했으나 당초의 잡음을 완전히 누그러뜨리지는 못했다.
또 시상식 자리에선 영화배우 장동휘씨가 시상을 거부하는 해프닝을 벌여 나중에 영화인협회로부터 제명처분을 당하는 등 올 대종상은 온통 상처 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끝>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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